미국 핀테크(금융+테크) 기업인 레모네이드는 2021년 2월 주가 정점에서 최근까지 2년 9개월 사이 주가가 12분의 1토막 났다. 2015년 설립된 레모네이드는 인공지능(AI) 기반 챗봇이 보험 판매 및 심사를 하고, 3초 만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모델로 주목받았다. 2020년 7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당시 21억달러(약 2조8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고, 상장 직후 주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7개월여 만에 공모가(29달러)의 6배에 가까운 163.93달러(2021년 2월)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현재 주가는 14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인터넷은행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영국 메트로뱅크도 비슷한 신세다. 2010년 설립된 메트로뱅크는 모바일 기반의 편리하고 저렴한 대출을 앞세워 빠른 확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8년 3월 4000파운드 넘게 올랐던 주가는 이후 폭락을 거듭해 현재 40파운드 초반까지 내려왔다.

2010년대에 등장해 전통 금융업 판세를 뒤흔들며 IT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던 글로벌 핀테크(금융+테크) 업체들이 최근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고금리와 성장 한계에 따른 투자 감소, 기존 금융회사들의 역습 등에 연쇄 타격을 받으며 기업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찬바람 부는 글로벌 핀테크 산업

글로벌 핀테크 업체들의 주가는 지난해 이후 전반적으로 크게 부진하다. 선진국 주요 핀테크 관련 기업 30곳의 주가를 추종하는 ‘MSCI 월드 셀렉트 톱30 핀테크 이노베이션’ 지수는 지난해에만 31% 급락했다. MSCI 세계 지수(-18%)보다 10%포인트 넘게 저조한 성적이다. 전반적인 글로벌 벤처 업계에 돈줄이 마르면서, 핀테크에 대한 투자도 끊기고 있다. 12일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핀테크 투자액은 1449억달러(약 192조원)로 2021년(2379억달러) 대비 39%나 줄었다. 투자 건수도 2021년 8052건에서 지난해 5498건으로 30% 넘게 감소했다. 리서치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들어도 1~3분기 핀테크 투자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672억→305억달러)나 감소했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업계에 따르면 투자 유치 규모가 2021년 기준 13억달러(약 1조7200억원)였던 국내 핀테크 산업은 올 들어 투자가 이보다 40~50% 넘게 줄었다. 실적도 부진하다. 국내 핀테크계 ‘빅4′로 불리는 네·카·토·핀(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핀다) 중 네이버페이를 빼고, 나머지 3곳은 지난해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다. 토스의 적자(-8620억원)가 가장 컸고, 이어 카카오페이(-1727억원), 핀다(-231억원) 순이다. 국내 1세대 핀테크 업체인 뱅크샐러드도 지난해 14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그래픽=김성규

◇고금리로 큰 타격...”기술 경쟁력 있어야 생존”

핀테크 업계의 찬바람은 지난해 가파른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불어닥쳤다. 조재박 삼정KPMG 부대표는 “금리 인상, 소비 둔화 등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기업을 볼 때 미래보다 현재 가치에 중점을 둔다”며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인지, 흑자를 낼 수 있는지 보게 됐고 핀테크 업체 중에는 그런 쪽에서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다”고 말했다. 고금리는 신용도가 대체로 낮은 핀테크 고객들의 연체 가능성을 높이면서 핀테크 업체의 건전성을 위협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금리 장기화는 은행 대신 핀테크 대출 기관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위험 부담을 안겨줬다”고 했다. 고객을 대거 끌어 모아야 하는 B2C(개인 대상 거래) 사업을 펼치던 초기 핀테크 업체들이 인프라 구축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계에 부딪힌 측면도 있다.

핀테크 산업이 지금은 어렵지만 조만간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비대면 금융 비중은 계속 늘어나는 데다, 은행이나 보험사 등 전통 금융회사들이 AI·머신러닝 등의 첨단 기술을 동원해 직접 혁신 서비스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핀테크에서 아이디어에만 의존하는 단계는 지났다”며 “확고한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