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보면 공포였습니다. 완전히 달라질 애플 카플레이 얘기입니다. 애플은 지난 6일 자사의 개발자 이벤트 ‘WWDC 2022′에서 차세대 ‘카플레이(CarPlay)’를 소개했는데요. 포드·포르셰·아우디·재규어·랜드로버·볼보·혼다·닛산 등 14개 브랜드와 연계, 센터페시아의 대형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계기판 등 차량 내부의 거의 모든 디스플레이를 아이폰과 같은 사용자인터페이스(UI·User Interface)로 바꿀 수 있는 신형 차량을 내년 하반기 선보일 예정입니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만든 자동차, 이른바 ‘애플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폰과 기존 제조사의 신차 사이의 연결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애플카에 근접한 체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하겠다는 얘기였죠.

애플은 지난 6일 'WWDC 2022'에서 차세대 카플레이를 소개할 때 “자동차 회사와 함께 차량 내 체험을 ‘재발명(reinvent)’하겠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하면서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하려고 했다(Apple was about to reinvent the phone)”라고 말했었던 것과 같은 맥락. 내년 말 등장할 차세대 카플레이가 애플의 자동차 분야 진입에 있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WWDC 2022 동영상 캡처

◇애플이 내년 말 내놓는 차세대 카플레이, 차량과 디스플레이 형태·크기에 상관 없이 아이폰과 같은 UI 제공... 아이폰 소유 운전자에겐 축복, 자동차회사엔 공포

이미 카플레이는 많이들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애플이 2014년 선보였죠. 자동차와 아이폰을 연결해 아이폰에 있는 음악을 카오디오에서 재생하거나 아이폰 지도앱을 내비게이션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아이폰 화면이 차량 디스플레이에 맞춤형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아이폰 조작이 가능합니다.

애플이 내년 말 내놓겠다는 차세대 카플레이는 아이폰의 정보뿐 아니라 속도·거리·연료잔량 등의 차량 계기판, 공조장치 정보까지 애플이 통합해 차량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여주게 됩니다. 속도계와 엔진회전수게이지 사이에 지도앱을 표시하는 등 화면 레이아웃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폰과 차량의 연결성이 기존 카플레이보다 훨씬 커지는 것이죠.

◇자동차 제조사가 차세대 카플레이 대응 차량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들의 차량에 담긴 주행 데이터를 애플에 넘겨준다는 의미... 애플로선 자동차 진입의 큰 장벽 넘는 것인 반면, 자동차 회사는 ‘판도라의 상자’ 여는 것일 수도

애플이 WWDC 2022에서 차세대 카플레이를 소개할 때 언급한 ‘단어’ 하나가 특히 신경 쓰였는데요. “자동차 회사와 함께 차량 내 체험을 ‘재발명(reinvent)’하겠다”고 말한 겁니다. ‘재발명’은 애플이 중대한 변혁을 얘기할 때 쓰는 경향이 있거든요.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하면서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하려고 했다(Apple was about to reinvent the phone)”라고 말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애플이 차량 내 체험을 재발명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은, 내년 말 등장할 차세대 카플레이가 애플의 자동차 분야 진입에 있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3가지로 풀어 보겠습니다.

차세대 카플레이는 차량 주행 데이터를 아이폰이 자체적으로 처리해 차량 화면에 표시해 준다. 그 결과, 기존에는 차량 중앙의 디스플레이에 아이폰의 기능만 구현될 뿐이었지만, 차세대 카플레이에선 자동차 계기판, 심지어 (앞으로 신차에 일반화될)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대형 디스플레이에도 아이폰에서 처리한 정보가 표시된다. /WWDC 2022 동영상 캡처

◇1. 아이폰의 정보·데이터 지배력,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자동차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지금까지 카플레이는 아이폰이 처리한 정보·데이터를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일방적으로 출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98%가 카플레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보급률을 자랑하는 것은 이 기능이 소비자에게 편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도입해도 당장 큰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카플레이가 차량에서 발생하는 주행 등 핵심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너도나도 쉽게 카플레이 대응 차량을 내놓게 된 것이죠.

반면 차세대 카플레이는 차량 주행 데이터를 아이폰이 자체적으로 처리해 차량 화면에 표시해주는 식입니다. 그 결과, 기존에는 차량 중앙의 디스플레이에 아이폰의 기능만 구현될 뿐이었지만, 차세대 카플레이에선 자동차 계기판, 심지어 (앞으로 신차에 일반화될)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대형 디스플레이에도 아이폰에서 처리한 정보가 표시됩니다. 게다가 화면 디자인도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갖고 있으면, 렌터카를 탔을 때도 자신의 아이폰을 그 렌터카에 연결하기만 하면, 평소 본인 소유의 차량에서 쓰던 화면과 같은 디자인의 차량 디스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차량의 주행 관련 데이터는 자동차 제조사 그들만의 것이었죠.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가 차세대 카플레이 대응 차량을 만든다는 것은, 그 제조사가 자신들의 차량에 담긴 주행 데이터를 애플에 넘겨준다, 혹은 열어준다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변화인 동시에, 자동차회사로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행 데이터가 아이폰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애플이 종전보다 훨씬 깊은 수준으로 운전자와 접점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그동안 자동차 제조사는 차량 정보를 한정된 서플라이어에만 일부 열어줬습니다. 최근에 급속히 늘고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가 제대로 사업화에 이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 차량의 핵심 데이터를 서비스업체 쪽에 제대로 공유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스마트폰 앱을 자동차에 연동한다고 해도 스마트폰의 정보와 자동차 정보 사이에는 아주 큰 벽 혹은 수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차세대 카플레이는 이 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물론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도 테슬라는 논외입니다. 처음부터 자체 OS를 통해 중앙의 대형 패널 하나로 모든 차량 정보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테슬라처럼 독자 소프트웨어를 통해 UI를 개발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애플의 UI 를 빌려 쓰는 것입니다. 내년 말부터 달라질 카플레이가 자동차의 주행 데이터까지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에는 이것이 애플판 자동차 OS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겠죠.

차세대 카플레이 제휴 기업 명단엔 벤츠·포르셰·아우디·포드·링컨·재규어·랜드로버·닛산·인피니티·아큐라·혼다·르노·볼보·폴스타(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등 무려 14개 업체가 들어가 있다. /WWDC 2022 동영상 캡처

◇2. 애플은 자동차를 제조하는 대신, 애플TV 같은 접근법을 취하게 될까?

지난 6일 WWDC 2022의 차세대 카플레이 발표 내용을 보면, 이른바 ‘애플카’에 대해 혼란이 생깁니다. 애플은 2010년대 중반 ‘타이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제 애플의 전기차 시장 참여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졌고 발표만 앞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죠. 반면 개발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고, 일각에선 ‘애플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차량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상반된 얘기도 들립니다.

‘애플카’가 반드시 실제 차량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근거로 애플 TV 사례를 들기도 합니다. 애플이 실제 화면이 있는 TV를 내놓을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결국 그런 제품은 나오지 않았죠. 현재도 셋톱박스 형태의 애플TV만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자동차에 대해서도 이른바 ‘애플카’라는 것이, 차세대 카플레이의 개념처럼, 카플레이에 참여한 자동차회사들의 최종 제품(그들의 자동차)을 통해 상품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6일 발표한 카플레이가 애플이 생각하는 미래차 혹은 미래차의 첫 단계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자동차회사들과의 공동 개발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PC 메이커와 연합해 OS(윈도우) 점유율을 확대한 뒤 서피스라는 독자 노트북·태블릿을 직접 제공하고 있듯, 구글이 스마트폰 업체와 연합해 OS(안드로이드)를 보급한 뒤 자체 제품군을 늘려나가고 있듯, 애플도 결국엔 ‘모빌리티 버전의 아이폰’을 내놓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애플이 차체·구동계까지 직접 설계한 ‘애플카’를 몇 년 안에 내놓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만, 지난 6일 공개한 차세대 카플레이의 중요성과 보급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한다면, 본격적인 애플카가 나올 시기가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차세대 카플레이에 대응한다는 것은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자사 차량의 핵심 데이터를 애플과 공유해야 하는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입니다. 애플로서는 자동차 제조사의 마음을 얻어야 빠른 기간에 보급을 늘릴 수 있겠죠. 시장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면, 애플이 2025~2026년 정도까지는 차세대 카플레이에만 집중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 사이에 애플이 이른바 애플카를 내놓겠다고 선언한다면, 차세대 카플레이에 참여하는 업체들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차세대 카플레이 계획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애플이 애플카를 내는 것보다 아이폰과 기존 자동차와의 연결성을 지금보다 훨씬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아이폰·애플워치가 차세대 카플레이를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자동차와 사실상 하나의 제품 생태계로 엮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3. 자동차 사용자 체험(UX)의 주도권은 누가?

차세대 카플레이 제휴의 후보 기업 명단엔 벤츠·포르셰·아우디·포드·링컨·재규어·랜드로버·닛산·인피니티·아큐라·혼다·르노·볼보·폴스타(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등 무려 14개 업체가 들어가 있는데요. 일단은 애플·구글 클래스의 소프트웨어·UI 개발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추지 못한 기업이 꽤 눈에 띕니다.(아닌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도 생각은 서로 다를 것이라 봅니다. 자체 능력이 너무 부족해 카플레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도 있을 테고요. 카플레이가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대세이니, (자체 개발도 하고는 있지만) 일단 동참하고 보자는 쪽도 있겠죠. 애플과 협업하고 또 벤치마킹해 결국엔 자체적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쪽도 있을 겁니다.

애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신차 구매자의 79%가 카플레이 대응이 안되면 구입 차량 후보에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체 승부하려는 자동차회사로서는 (자사 차량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차세대 카플레이를 배제할 것인가, 혹은 (데이터 주권을 포기하고서라도) 결국엔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겠죠. 물론 14개 제휴 기업 후보는 차세대 카플레이와 관련해 애플과 협업하겠다는 것일 뿐, 실제로 자사 차량에 차세대 카플레이를 탑재할 것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명단에는 도요타·GM 등이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독자적으로 살아남겠다, 애플에 우리 차량의 데이터를 호락호락 넘기지 않겠다는 심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독일 고급차 업체 중에는 유일하게 BMW가 명단에서 빠져 있는데요. BMW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현대·기아·제네시스도 명단에서 빠져 있죠. 현대차는 인포테인먼트 쪽 SW 플랫폼으로 이전에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앞으로 나올 신차들에는 자체 개발한 인포테인먼트 OS인 ‘CCOS’를 탑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 구글·애플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 생존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참고로 구글도 2014년 ‘안드로이드 오토’를 발표했고, 세계 주요 자동차 메이커가 이에 대응하고 있죠. 안드로이드 오토 대응 차량은 지난 1년 사이 50%가 늘어 올해 5월 기준으로 1억5000만대 이상이나 됩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기존의 애플 카플레이와 유사합니다. 안드로이드폰의 정보·데이터를 차량에 장착된 디스플레이로 출력하는 개념이죠. 구글은 여기에 더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OS인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도 보급하고 있습니다. 볼보가 일찌감치 탑재했고 GM·혼다 등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회사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점점 커질 모빌리티 데이터 사업에서 구글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애플의 카플레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혹은 오토모티브)가 계속 진화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자동차회사는 주행성능이나 승차감·안전·환경 쪽에 주력하는 한편, 유저와의 접점은 애플·구글에 맡기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 아직 힘 있는 몇몇 자동차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제아무리 애플·구글이라도, 테슬라처럼 스스로 소프트웨어·하드웨어(자동차)를 다 하지 않는 이상, 자동차회사 차량의 핵심 데이터에 접근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죠. 앞으로 몇 년간 애플·구글과 메이저 자동차 제조사가 시장 선점을 위해 격렬한 전투를 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말씀 올립니다>

오늘을 끝으로 ‘최원석의 디코드’ 연재를 잠정 중단합니다. 2020년 7월9일 첫 ‘디코드’를 쓴 이후 2년 가까이 매주 목요일마다 한주도 빠짐없이 연재해 왔는데요.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동차와 신기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처럼 흥분되는 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안팎으로 닥쳐오는 위기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기적인 부침에 너무 낙담·당황하지 마시고, 어렵더라도 긴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보시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 풍요로운 미래를 기원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clotho9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