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반도체 부족이 오히려 테슬라를 부각시키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가 감산 공포에 떨고 있는데, 테슬라만 나홀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는 올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한 24만 1300대를 팔았습니다. 월가 예상(22만대 안팎)을 넘어 분기 최다 판매 기록이었지요. 다른 회사들은 반도체 조달난 때문에 대폭 감산에 들어갔는데요.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의 3분기 미국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33% 감소한 44만대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테슬라도 반도체 부족 사태와 무관할 리는 없습니다. 최근 CEO 일론 머스크가 ‘이 두 회사가 반도체를 제 때 안줘서 너무 힘들다’는 취지로 일본 르네사스와 독일 보쉬를 공개 저격하기도 했었죠.

도요타의 소프트웨어 기반 개발과 자율주행 등을 담당하는 '우븐 플래닛'의 제임스 커프너(50·가운데) 대표. 오른쪽은 우븐 플래닛 산하의 회사인 '우븐 알파'의 도요다 다이스케(33) 대표. 현 도요타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의 장남이다. /도요타 타임스

◇테슬라, 반도체 부족 사태에도 3분기 73% 증산... 소프트웨어 장악한 회사의 위기 대응력에 자동차 업계 놀라

따라서 테슬라에서도 반도체 결품이 부분적으로는 발생했을텐데요. 3분기에 어떻게 그런 성과를 냈을까요? 결품이 발생했을 때 ‘소프트웨어를 수정’함으로써 결품된 반도체를 다른 범용 반도체로 대체해 견뎠다는게 테슬라 측의 설명입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테슬라가 보여준 능력의 핵심이죠. 소프트웨어를 장악한 자동차 회사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었습니다.

☞반도체 없어 난리인데, 테슬라 생산 늘린 3대 비결 (2021.4.8)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06773

라이벌 업체들은 어떤 반도체가 부족해지면, 그것을 소프트웨어를 수정해 다른 반도체로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부품에만 들어가는 전용 반도체, 그 반도체에서 돌아가는 전용 소프트웨어를 부품회사가 대부분 ‘블랙박스’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 테슬라는 차량 OS와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OTA(Over The Air·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기능을 쇄신하고, 예기치 않은 결함·오류가 발생했을 때에도 대부분의 경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죠.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반도체가 결품이 됐을 때, 소프트웨어를 변경해 다른 범용 반도체를 대신 끼워넣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폴크스바겐이 특정 반도체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을 다시 겪지 않고, 미래에 서비스로 돈을 버는 회사가 되기 위해, 전담 소프트웨어인력만 5000명, 관련 인력 2만명을 투입해 자체 OS(VW.OS)를 맹렬히 개발 중이라고 했는데요. 벤츠 역시 미국 반도체·AI회사 엔비디아와 함께 OS(MB.OS)를 개발 중입니다. 폴크스바겐과 벤츠는 2024~2025년쯤 진정한 의미의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가 끝난 뒤 자동차 업계에 벌어질 일 [최원석의 디코드] (2021.9.30)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43420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독일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로 변신을 시도 중인건 알겠는데, ‘업계 우등생 도요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도요타는 전기차를 거의 안만들잖아. 경쟁력을 잃을거야. 기계 중심 회사가 스마트카 시대에 대응할 수 있겠어?’라고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전기차에 대해선 2025년 이전까지는 자신들 장기인 하이브리드카 중심으로로 대응하다가 2025년부터 전기차 비중을 대폭 늘려나간다는 전략과 투자 규모·일정을 지난 9월 제시했습니다. ‘2030년까지 16조원을 들여 연산 200기가와트시(연산 300만~400만대에 탑재할 분량)의 배터리를 내재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요타, 연 300만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선언… 현대차의 전략은? [최원석의 디코드] (2021.9.9)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39354

또 도요타는 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대세인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한 차세대 ‘전고체배터리’를 착실히 준비 중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본인들이 전기차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전기차 상용화는 2030년쯤은 돼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이 무서운 진짜 이유 [최원석의 디코드] (2020.12.17)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84002

12년째 도요타 사장으로 재임 중인 도요다 아키오(65·왼쪽). 도요타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의 직계 손자다. 오른쪽은 우븐 플래닛 대표이자 도요타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제임스 커프너(50). /도요타

◇도요타의 미래 보여줄 소프트웨어·자율주행 회사 ‘우븐 플래닛’

그러면 도요타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규모로,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를 도요타 내의 어떤 사건과 몇몇 인물, 조직구조 변화 등을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작년 9월 도요타 내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부터 시작해 보죠. 당시 도요타는 사내 주요 간부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2022년까지 ‘소프트웨어 퍼스트’ 체제로 이행하며, 차량 탑재용 전자 아키텍쳐(architecture)도 완전히 새로 개발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공개했습니다.

이때부터 주목받은 회사가 2018년 도요타가 설립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전문 자회사인 TRI-AD(Toyota Research Institute-Advanced Development)였습니다.

‘아린(Arene)’이라 불리는 도요타 차량용 소프트웨어의 통합 개발 환경(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을 개발하는 회사인데요. 업계에서는 아린의 성과가 도요타 전체 소프트웨어 개발의 효율과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도요타가 정말 소프트웨어 우선의 회사로 변신한다는 것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요.

우븐 플래닛홀딩스(Woven Planet Holdings)라는 회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TRI-AD 즉 아린을 개발하던 회사가 확대돼 올해 1월 만들어졌습니다. 우븐 플래닛은 지주회사이고요. 지주회사 아래에 사업회사인 우븐 코어(Woven Core)와 우븐 알파(Woven Alpha), 투자회사인 우븐 캐피탈(Woven Capital)이 있습니다.

우븐코어는 자율주행기술의 개발, 구현, 시장 도입 등을 맡고요. 우븐 알파는 도요타판 자동차 OS ‘아린’과 올해 3월 착공된 실증실험 도시 ‘우븐 시티(Woven City)’ 프로젝트, 우븐 캐피탈은 자율주행·소프트웨어 관련 해외 기업의 인수를 주로 담당합니다.

도요타판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인 ‘우븐 시티’. 자율주행과 로봇, 모빌리티, 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기술과 서비스를 일상생활에 적용해보는 ‘살아 있는 실험실’로 고안됐다. /도요타

◇우븐 플래닛 대표는 구글 자율주행팀 출신 미국인... 도요타 차기 사장 후보로도 거론

여기서 주목할 인물이 두 명 있습니다. 우븐 플래닛 대표이자 도요타 차기 사장으로까지 거론되는 제임스 커프너(James Kuffner·50), 도요타 현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의 장남이자 우븐 알파 대표인 도요다 다이스케(豊田大輔·33)입니다.

커프너 대표는 스탠퍼드대 컴퓨터사이언스 박사로 로보틱스와 모션플래닝 연구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99~2001년 일본학술진흥회 프로그램을 통해 도쿄대에서 연구하기도 했었죠. 2009년 구글 자율주행팀에 들어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과 함께 구글 로보틱스 투자를 이끌었고, 구글·소프트뱅크를 거쳐 현대차 품에 안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구글 인수에 관여했습니다. 2016년 도요타가 실리콘밸리에 세운 연구소인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트(TRI)의 CTO로 스카웃되며 도요타에 합류했고요. 2018년, TRI가 확대 개편된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트-어드밴스트디벨롭먼트(TRI-AD) CEO, 올해 1월 TRI-AD가 다시 확대된 우븐 플래닛홀딩스의 CEO가 된 것이죠. 작년에 도요타 이사회 멤버에도 들어갔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65)가 12년째 사장으로 재임 중인데요. 커프너가 정말 차기 사장에 임명된다면 도요타 최초의 외국인 사장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도요타는 창업자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번갈아 사장을 맡는 전통이 있고, 자동차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크게 바뀌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구도 상으로는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는 연구개발본부 수장을 알버트 비어만이라는 독일인이 맡고 있습니다. 차량의 기본 성능을 향상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이지만, BMW 고성능차 개발자 출신 즉 기계 전문가이지요. 도요타의 커프너에 필적할만큼 실리콘밸리 사정에 밝고 자율주행·소프트웨어에 전문인 외국 임원은 현대차에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커프너가 대표인 우븐 플래닛(총 자본금 200억엔)이 도요타 그룹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기업에 창업가문인 도요다 아키오 현 사장이 50억엔을 개인 출자했다는 것, 자신의 장남을 우븐 플래닛 산하 회사인 우븐 알파의 대표로 앉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븐 플래닛은 도요타의 차세대 차량용 소프트웨어 기반 ‘아린(Arene)’을 개발 중이고요. 현재 1200명 정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지만, 3000명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도요타는 우븐 플래닛 3000명을 포함해 도요타 전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1만8000명까지 확대할 예정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1만8000명이라면, 그 규모만으로도 소프트웨어 퍼스트 체제 이행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으로도 현대차의 전체 엔지니어 숫자보다 50% 더 많은 것이니까요.

커프너가 전세계 자율주행기술이나 소프트웨어 트렌드를 꿰고 있어서인지, 최근 우븐 플래닛의 기업 인수를 보면 도요타의 미래에 꼭 필요한 기업들을 콕 집어 사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선 지난 4월에 미국 차량공유업체 리프트의 자율주행 부문을 5억5000만달러에 인수해 300명이 넘는 고급 엔지니어를 확보했습니다. 또 7월에는 자율주행용 고정밀 지도와 도로정보 해석에 강점을 가진 미국 기업 ‘CARMERA’, 지난 9월엔 실리콘 밸리에서 자동차 OS를 개발하는 기업인 ‘Renovo Motors’를 인수했습니다.

도요타의 아린 개발 작업은 미래에 자동차 기반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돈을 벌기 위한 기초공사 같은 것인데요. 차량 OS와 자율주행에 필요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인수함으로써, 도요타가 이미 개발하고 있는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개발기간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도요타 사장의 장남이 우븐 플래닛 산하 회사 대표로... 소프트웨어에 회사의 미래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커프너가 대표로 있는 우븐 플래닛 산하의 회사 중 하나인 우븐 알파입니다. 회사 이름부터 심상치 않지요.

‘우븐’은 직조(織造) 즉 방직기 회사에서 출발한 도요타자동차 모기업의 원류를 의미하는 동시에, 세계를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잇겠다는 의미일테고요. ‘알파’는 도요타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겁니다. 그리고 창업자의 직계 손자인 현 도요타 사장이 30대 초반의 자기 아들을 그 회사 대표로 임명한 것입니다. 우븐 알파는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입니다. 도요타 스스로 회사의 미래가 소프트웨어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븐 알파가 맡은 중요한 프로젝트가 ‘우븐 시티’인데요. 자율주행과 로봇, 모빌리티, 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기술과 서비스를 일상생활에 적용해보는 ‘살아 있는 실험실’입니다. 연구자만 모인 공간이 아니라 도요타 연구원과 직원· 가족, 다른 기업의 연구자, 공모를 통해 뽑은 주민 등 2000여명이 실제로 거주하게 됩니다.

2020년 폐쇄된 도요타 공장 터(시즈오카현 스소노시) 70만8000㎡(약 21만4000평)에 들어섭니다. 올 3월 착공해 2025년까지 1차 완성 예정입니다.

우븐 시티를 통해 도요타가 제안하는 것은, 자율주행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자동차만 바뀌어서 되는게 아니고, 자동차를 활용하는 공간, 즉 도시 인프라 자체가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시의 OS 자체를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븐 시티는 도요타판 스마트시티인 동시에 도요타판 도시(都市) OS의 집약체입니다. 우븐 알파는 이런 구조를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도요타판 소프트웨어 개발기반 ‘아린’은 당장은 도요타 자동차의 소프트웨어 통합 개발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엔 자동차·도시 통합 OS를 준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고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도요타가 소프트웨어 조직과 인력의 진용을 갖추고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인만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동차의 스마트폰화’는 피처폰의 스마트폰화에 비해 오래 걸리고, 업계 특성상 한 업체가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테슬라가 아직 물량을 충분히 늘리지 못하고 있고, 애플·구글 등이 본격 참전하기 전인 지금 상황에서, 자동차회사들이 자신들의 차량과 조직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꿔 나갈 시간은 아직 있다는 겁니다. 뛰어난 기술 리더와 대규모 소프트웨어 조직을 갖춰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IT업체들이 갖지 못한 오랜 차량 개발·운용 경험을 잘 살릴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게다가 AP(모바일기기의 두뇌) 원천설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ARM’ 같은 회사가 자동차 회사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도요타나 폴크스바겐 같은 회사는 이미 ARM의 결정을 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ARM이나 다른 IT 기업의 지원까지 받는다면, 자동차회사가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자동차’ 시대에 독자 생존하거나 IT기업에 맞설 기반을 갖출 가능성은 아직 충분해 보입니다.

*뉴스레터 ‘최원석의 디코드’를 구독하시면, 목요일 아침마다 모빌리티·테크·비즈니스 관련 새로운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 구독자 전용 글을 받아보시거나 추후 마련될 이벤트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최원석의 디코드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