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테슬라는 지난 10일 자사의 플래그십(旗艦) 차량인 ‘모델 S’ 신형의 고객 인도식을 열고, CEO 일론 머스크가 무대에 나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을 토대로,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혹은 물리적 한계 이외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는) 공학, 두번째는 ‘복잡성'에 대한 머스크의 접근법입니다.

본론에 앞서, 행사 내용을 요약해볼게요. 신형 모델S의 최상급인 ‘플래드(Plaid)’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99초입니다. 시판차로는 처음으로 2초를 밑돌았다고 테슬라는 말했습니다. 15분 충전으로 300km를 달릴 수 있도록 충전 성능도 개선됐습니다. 소니의 최신 게임콘솔 플레이스테이션5와 같은 성능의 반도체를 사용, 17인치 디스플레이로 최신 게임을 고화질로 끊김 없이 즐길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습니다. 미국 내 가격은 주행거리 650km의 ‘롱레인지’ 모델이 7만9990달러(약 9000만원), 최고시속 320km에 주행거리 620km인 ‘플래드’ 모델이 12만9990달러(약 1억45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테슬라가 모델S 성능을 개선한 것은 이 모델을 처음 내놓은 2012년 이후 9년 만인데요.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고성능 전기차를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테슬라는 신형 모델S의 생산을 3분기부터 월 4000대, 연간 5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10일 열린 행사 요약이고요. 본론 두 가지, 즉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공학, ‘복잡성’에 대한 머스크의 접근법에 대해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머스크의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공학’... 물리는 법칙이지만 나머지는 권장사항일뿐

첫번째는 이번 행사에서 머스크가 말한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공학’ 즉 공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날 머스크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너드(nerd)를 보는 것 같았죠. 혼자 히죽 웃는다든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재개그를 한다든지 하는걸 보면 말입니다. 그의 발언은 매우 훌륭했지만, 이날 행사가 무성영화였다면 머스크가 바보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나쁘게 보면, CEO로서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최근의 몇가지 언동에서도 나타났듯 말입니다. 하지만 좋게 본다면, 이미 최고 부자 반열에 올랐고,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떠받들지만, 본인 자신은 겉멋이나 오만함에 전혀 지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어색한 행동이 오히려 그에게 인간적 매력을 부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스티브 잡스의 완벽함과는 많이 다르죠. 하지만 그가 무대에서 얘기한 몇가지는 두고두고 음미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테슬라는 지난 10일 자사의 플래그십(旗艦) ‘모델 S’ 신형의 고객 인도식을 열었다. CEO 일론 머스크가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 /테슬라 유튜브 캡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무엇 때문에 이런 정신나간 성능의 차량을 만드냐’고 묻곤 한다.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다. 미래에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동수단으로 전기차가 최고의 대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흔적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다.

나는 이런 목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이런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모델 S 플래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속성능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모델 S 플래드를 개발하면서 성능에 대한 목표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96km)까지 가속하는데 2초의 벽을 깨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떤 양산형 차량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2초 아래로 끊지 못했다.

심지어 모델S 플래드는 (달리는 성능에만 특화된 2도어 2인승 스포츠카도 아니고) 4도어에 5인승 차다.

나는 이것을 간단히 말해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공학(limit-of-physics engineer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물리학은 법칙이지만, 이외의 다른 것들은 권장사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강력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600km 이상의 주행가능 거리를 제공한다.

정말 자랑스러운 것은 카본으로 두른 로터(carbon sleeved rotors)를 썼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카본이 둘러진 방식의 로터를 이용해 모터를 만든 것은 우리가 최초다.

카본과 (로터에 감는) 구리는 다른 열팽창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성하는게 정말 어려웠다.

카본을 로터에 정확히 감기 위해 아주아주 높은 텐션(장력)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카본을 로터에 감는 기계를 설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상용화된 기계 중에는 해당 성능을 구현해 낼 수 있는게 없었다.(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차량이 이 정도의 고속을 내려면 모터에 아주 높은 분당 회전수(rpm)가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원심력 때문에 로터가 팽창·분리될 수 있다. 카본이 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모터를 보여주면서) 엔지니어링의 결정판이다. 손으로 들어올릴 수 있을만한 무게이지만, 이 모터가 2톤짜리 차를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 2초 이내로 가속시킬 수 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머스크가 말한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공학(limit-of-physics engineering)’입니다.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말인지 아니면 머스크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한 다음에 “물리학은 하나의 법칙이지만, 이외의 다른 것은 권장사항일 뿐”이라고 했지요.

머스크가 여러 말을 하는 와중에 지나가듯 한 말이라서, 제가 의미를 정확히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엔지니어들이 ‘이건 공학적으로 안된다’고 하는 말에 리더가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리적인 한계는 법칙으로 존재하지만, 그 이외 것들의 이른바 한계라는 것은 정해진게 아니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도 참고만 하라는 얘기인 것이죠.

◇분명한 이유를 찾고, 그 이유에 맞는 높은 목표를 먼저 설정해야

머스크는 행사에 등장하면서, 신형 모델S의 가속력 얘기, 그리고 ‘왜 이런 정신나간 차를 만들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머스크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뭐였을까요?

그것은 우선 목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가 확실하다면 ‘목표를 먼저 설정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아주아주 높은 수준의 목표 말입니다.

머스크의 이날 설명에 따르면, 모델S 플래드의 기획과 현실화 순서는 이렇습니다.

1. 나는 전기차가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이동수단으로 최선이라고 믿는다.

2.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포함해 어떤 다른 차량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 특히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 구입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

3. 내연기관차의 성능 지표로 가장 심플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 가속성능이다.

4. 지구상의 어떤 양산차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를 2초 이내로 끊은 차는 없다.

5. 따라서 우리가 세계최초로 2초 언더(1.99초)의 차를 만들어 전기차의 우수함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6. 물리적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의 가속을 2초 이내로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면, 난제가 많더라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반드시 목표를 달성한다.

대강 이런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전혀 무모하거나 미친 짓이 아닙니다. 이는 역사상 초일류 엔지니어들이 일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시계를 아주 뒤로 돌려 100여년 전 헨리 포드 시절로 가 보죠. 헨리 포드는 미국인 누구나 차를 한 대씩 갖는 나라를 꿈꿨습니다. 그 산물이 1908년 나온 모델T였죠. 모델T는 1909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는데, 그 해 생산대수가 1만대였습니다. 이것도 적은 숫자는 아니었죠. 하지만 불과 5년 뒤인 1914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20만대가 되고요. 1923년이 되면 1년에 무려 200만대, 즉 2020년 기준으로도 전세계의 어떤 단일 차종보다 훨씬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게 됩니다. 1910년 모델 T 한 대의 가격은 현재 기준으로 2만5000달러 수준이었지만, 1916년이 되면 8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그럼 헨리 포드는 어떻게 100년 전에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물론 컨베이어벨트 방식이 도입되는 등 여러가지 기술혁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헨리 포드에게 꼭 이렇게 해야겠다는 이유와 의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아주 높은 목표를 설정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공학의 한계에 도전해 목표를 이뤄낸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한 것처럼, 공학이나 다른 여러 여건 상 어려움이 많긴 해도,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가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는데, 제가 2013년 일본 나고야에서 우치야마다 다케시 당시 도요타 부회장을 일본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가 해준 이야기입니다.

그는 1997년 시판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인데요. 그가 들려준 개발 비화는 제 예상과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그는 당초 개발 목표는 하이브리드카를 만드는게 전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뭘 개발하는지는 전혀 정해진게 없었고, 다만 기존에 연비가 가장 좋은 차보다 연비가 2배 좋은 차를 개발한다는 목표만 세워졌다고 합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다가 고육책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핵심은 ‘당시 도요타 경영진이 목표를 정할 때, 당시 기술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진게 아니라,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을 미리 설정해 버렸다’는 겁니다. 엔지니어로서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됐던 상황이었던 거죠. 그는 “역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에 ‘기존 차량 연비의 2배’라는 아주 큰 목표를 정하고 죽을 고생을 해 차를 개발했기 때문에, 제품을 내놓은 지 15년(당시 기준)이나 지난 지금까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어디까지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도전해 나가느냐가 성취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100여년 전 헨리 포드가 싸고 품질 좋은 차를 1년에 200만대씩 찍어내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당시 수많은 전문가·엔지니어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겁니다. 안되는 이유를 수천가지쯤 댔을지 모르죠. 하지만 헨리 포드는 목표를 정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난제를 하나씩 해결해 갔습니다.

머스크가 모델 S 플래드를 만들면서 당면했던 과제도 헨리 포드나 우치야마다 다케시의 맞닥뜨렸던 것과 비슷했을지 모릅니다. 지구상의 어떤 내연기관차보다 더 빠른 전기차를 만들면서, 동시에 기존보다 주행거리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 이런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공학적 수단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죠. 그래서 로터에 카본을 두르는 식으로 지금까지 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높은 모터 회전속도를 달성하고, 배터리의 패키지를 바꾸고, 전기차에서 특히 중요한 열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차량의 공기저항 계수를 극한까지 낮춤으로써, 이런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저마다 다 사정이 있고 어려운 것이지만,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의의로 단순합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지금까지 없던 것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들을 제대로 쓸 것인가 아닌가는 순전히 리더에게 달려 있습니다. 달성할 수 있는 한계는 목표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이유를 얼마나 제대로 찾고 또 강하게 의지를 갖고 실행할 것이냐에 달려 있을지 모릅니다. 목표 수준이 낮다면 모두에게 편할지 모르지요. 하지만 달성한 결과물 자체도 그저그런 수준에 불과할 겁니다.

오토 시프트 기능. 시트에 앉은 운전자가 기어를 조작할 필요 없이, 차량이 앞·뒤 장애물을 감지해서 미리 드라이브 모드를 D나 R로 정해준다. /테슬라 유튜브 캡처

◇”사용자의 모든 인풋은 에러, 에러(인풋)는 적을수록 좋다”... 사용자가 무언가 하려 할 때, 차가 이미 파악하고 실행해야

두번째는 복잡성에 대한 접근 방법입니다.

머스크는 이날 모델S의 기어 셀렉터를 아예 없애 버리고 ‘오토 시프트’ 기능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나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모든 인풋(input·입력)은 에러라고 생각한다”고 했지요.

사용자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자동차가 이미 그것을 파악하고 실행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기존 차량도 운전자가 차량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고, 시트에 앉아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량 전원이 들어오는 것까지는 됩니다. 그 다음에 운전자가 전진이나 후진 기어를 선택하고 출발을 하게 되지요. ‘오토 시프트’는 여기에서 드라이브 기어를 선택하는 과정까지 한 단계 더 자동화한 겁니다.

시트에 앉은 운전자가 기어를 조작할 필요 없이, 차량이 앞·뒤 장애물을 감지해서 미리 드라이브 모드를 D나 R로 정해줍니다. 장애물이 분명치 않은 경우에도,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서 운전자가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등의 평소 행동을 위치 정보와 연계해 기억해 놓았다가, 다음에는 운전자가 같은 조작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차량이 운전자의 생각을 읽어서, 운전자가 기어 셀렉터를 손으로 조작하는 작업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것이죠.

따라서 신형 모델S에는 기어 셀렉터 자체가 없지만, 운전자가 차량이 제시한 선택지를 바꾸고 싶다면 중앙의 대형 화면을 쓸어올리거나 내려서 단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화면이 꺼지는 경우에 대비해 센터콘솔 뒤쪽에 작게 수동 버튼도 마련해 놓기는 했더군요.

이외에도 내비게이션 조작 등에서 운전자 조작을 최소화하도록 차량이 스스로 기억하고 학습하는 기능이 더 향상됐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할 때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은 두번 조작하게 만들지 않지만, 나쁜 프로그램은 할 때마다 계속 새로 조작해 줘야 합니다. 테슬라의 전체 UI도 점점 더 인간의 조작 횟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토 시프트도 운전자가 차량에 다가가면서부터 차량이 출발할 때까지, 버튼·레버 조작 없이 가능한 심리스(seamless)한 사용자 체험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지요.

일론 머스크가 “사용자의 인풋은 에러”라고 말한 것은 사용자의 인풋은 없을수록 좋다는 것, 즉 사용자의 마음을 차가 미리 읽어서 사용자의 조작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의 반영일텐데요. 전형적인 일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마인드라고도 할 수 있겠죠.

‘테슬러의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아마존과 야후에서 유저인터페이스 최고책임자로 일했던 래리 테슬러(Larry Tesler)는 복잡성 보존의 법칙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서비스나 제품에 포함된 복잡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만약 공급자가 복잡함을 더 짊어지면 그만큼 소비자가 심플함을 더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류가 아닌 공급자는 제품의 복잡함을 스스로 소화해 정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가 그 복잡함을 떠맡게 된다는 겁니다. 래리 테슬러가 일으킨 혁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그가 1983년 애플 컴퓨터에 처음 적용했던 잘라내기·복사하기·붙여넣기(cut, copy and paste)였죠. 래리 테슬러가 이 위대한 기능을 통해 잘·복·붙의 번거로움을 공급자 단계에서 정리해줬기 때문에, 이후 소비자들은 이 일을 전보다 훨씬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죠.

보통의 엔지니어들은 기능을 새로 추가하면 인터페이스도 추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식으로 복잡함을 사용자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사용자가 그런 복잡성 때문에 고통받는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떠안깁니다.

‘오토 시프트’의 본질도 어찌보면 첫번째와 통합니다. ‘사용자의 인풋은 에러다. 따라서 인풋을 어떻게든 최소화한다’라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 기능일 뿐이니까요. 이유를 분명히 하고 높은 목표를 설정해 실행해 나가는 겁니다. 엔지니어들이나 관계자들은 이게 안되는 이유를 수백가지 대겠지요. 하지만 인풋을 줄이는게 좋은 것 올바른 것이라면, 그 길로 가야 하는 겁니다. 소비자가 더 고급스럽고 매끄러운 체험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그 뒷단에 강력한 컴퓨팅파워를 가진 통합형 전자제어 플랫폼이 필요하고, 그 외에도 여러 난제가 있겠지만, 결국은 소비자에게 더 큰 만족과 매력을 줘야만 선택을 받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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