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일본의 대표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이하 닛케이)가 ‘삼성 위기론’ 기사를 연달아 터뜨리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반도체 수탁생산 2위인) 삼성과 (1위인) TSMC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삼성의 스마트폰 경쟁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내용에 이어, 지난 18일자 닛케이산업신문(日経産業新聞)과 이후 닛케이 인터넷판에 ‘삼성의 메모리 독주(獨走)에 암운(暗雲)... 미국 마이크론이 수익률로 역전(逆轉)’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삼성이 세계 1위인 메모리에서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취지였죠.

위 내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첫번째 기사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두번째(삼성의 메모리도 위험하다)는 일본 시각에서 한국 기업을 부당하게 때린 것 아닐까’라고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5월18일자 닛케이산업신문 기사. ‘삼성의 메모리 독주(獨走)에 암운(暗雲)... 미국 마이크론이 수익률로 역전(逆轉)’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우선 지난 18일 닛케이 기사 내용과 이것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 ‘삼성의 메모리 1위도 위험할 수 있는 3가지 이유’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3가지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전략에 따라 미국 마이크론의 메모리 시장 지배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2. 메모리 인력의 충분한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핵심인력의 외부 유출까지 발생하고 있다

3. 전투 지역은 너무 넓은데, 효자사업 수익률 떨어지면 모든게 위험해질 수도

◇닛케이, ‘삼성의 메모리 독주에 암운, 미국 마이크론이 수익률 역전’ 보도

우선 닛케이의 18일 기사 내용입니다.

<삼성전자의 고수익을 지지해 온 반도체 사업에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1~3월)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18%로,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20%)에 역전을 허용했다. 효자 사업의 수익력 저하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과 디스플레이 등 다른 부문의 투자 여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분기 반도체 사업의 수익력 저하는 미국 텍사스주 공장 정지의 영향이 크다. 한파에 따른 정전 여파로 2월 중순부터 가동 정지가 이어졌고 이 기간의 기회 손실이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감소 요인이 공장 정지만은 아니다. 매출 5조엔,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자랑하는 메모리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우위를 흔드는 것이 마이크론이다. 마이크론은 반도체 회로선폭 15나노(나노는 10억분의 1)m의 최첨단 D램 양산기술로 삼성을 추격했고,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는 삼성에 앞서 메모리 소자를 세로 방향으로 쌓아올리는 최첨단 176층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흐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2021년 2월기 결산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업계를 견인하는 최첨단 제품 양산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2022년에는 이들 제품이 주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4월 29일 결산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경쟁사들의 호조에 대해 “D램에서 15나노 비중은 우리가 업계 최고 수준이며, 하반기 14나노 양산을 본격화해 계속 업계를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옴디아에 따르면 D램의 2020년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41.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SK하이닉스(29.4%)와 마이크론(23.5%)이 뒤를 이었다. 한·미 3사는 과점 시장에서 고수익을 누려온 바 있다. 그 결과 2018년 슈퍼사이클로 불린 호황기에는 3사 모두 50%가 넘는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이런 고수익 배경에는 ‘제왕 삼성’의 투자 조정이 있었다. 수급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설비투자를 조정해 수급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최첨단 제품을 독점 공급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는 삼성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론의 기술 향상으로 점유율 쟁탈전에 돌입하면, 낸드에 비해 안정적인 D램 시황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실제로 삼성의 D램 점유율은 2016년 46.6%에서 5%포인트 떨어졌다. 낸드에서도 2016년 36.1%에서 2%포인트 저하했다. 반대로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D램은 3%포인트, 낸드는 1%포인트 올랐다.

삼성에 있어 영업이익의 과반을 계속 벌어 온 반도체 메모리 사업은, 다른 사업의 투자를 낳는 수익의 원천이었다. TSMC와 경쟁을 벌이는 수탁생산(파운드리) 분야 투자금액도 커지고 있고,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사업에서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도 상승세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률은 아직 18%로 제조업으로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행투자가 늘어나는 시스템반도체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인 마이크론과의 이익률 역전을 삼성의 경쟁력이 약화된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의 경쟁력, 그리고 메모리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는 데 삼성과 마이크론의 기술 격차를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럼 이 같은 기사가 나온 배경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삼성은 한국의 제조기업 가운데 일본에서 공포 내지는 위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닛케이가 항상 주시할 수 밖에 없지요. 일본의 종합 미디어검색서비스 ‘닛케이텔레콘’으로 지난 한달 간 ‘삼성’이 들어간 기사를 찾으면 1288건이 뜹니다. 반면에 삼성에 이어 D램 점유율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164건이고요. 한국의 다른 기업들 검색 건수는 많아봐야 두 자릿수입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일본에서 두려워하는 한국 기업은 삼성 뿐이라는 얘기도 되겠지요.

위의 닛케이 기사도 그런 일본의 삼성에 대한 공포 혹은 ‘원한’을 배경에 깐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러나 내용에 근거가 있고 논리도 나름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보다 우리 반도체산업이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정보로 활용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 글의 본론인 ‘삼성의 메모리 1위도 위험할 수 있는 3가지 이유’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미국 아이다호 주에 있는 마이크론 본사. /와이어드

◇1.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전략에 따라, 마이크론의 메모리 시장 지배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닛케이에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부상이 위협적입니다. 4~5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밀려 고전했지만, 최근의 반도체 부족과 단가 상승 등에 힘입어 수익력이 크게 좋아졌고요.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수익을 개발에 쏟아부은 결과, 삼성전자와의 메모리 기술 격차를 조금씩 좁힐 수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삼성전자가 2위권 업체의 추격을 기술력으로 따돌리고 시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었지만, 마이크론이 강해지면서 이게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요인이 작용합니다. 첫번째는 마이크론이 2012년에 파산한 일본의 마지막 D램 업체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일본의 관련 기술과 인재를 고스란히 흡수했다는 겁니다. 현재 마이크론의 D램 개발을 이끄는 사람은 일본인인데요. 엘피다 시절부터 메모리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이 사람 외에도 마이크론에는 1980년대 일본 반도체의 최전성기 때부터 메모리 개발에만 매진해 온 전문가들이 즐비합니다. 일본 반도체의 ‘패전’은 내부 경영을 잘못했거나 외부 경쟁 환경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었지, 기술 자체나 유능한 엔지니어가 없어서는 아니었거든요. 제대로 된 리더십·환경과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저력을 발휘할 인재들은 여전히 많은 거죠. 즉 마이크론은 미국뿐 아니라 과거 세계최대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의 D램 자원을 마음껏 활용하게 된 것이죠. 마이크론의 기술적 약진은 그런 결과가 서서히 나오는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미국 정부가 마이크론의 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사시에 미국이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할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TSMC·삼성전자 같은 아시아 기업에 의존해 왔던 상황을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대만 TSMC나 삼성전자에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더 지을 것을 요구하는거죠. TSMC·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에 밀렸던 인텔이 다시 파운드리로 승부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에 인텔의 CEO가 재무통에서 최고의 기술 전문가로 바뀌었는데요. 이것이 정부 입김 때문이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현재 미국 반도체 업계의 흐름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텔이 지금까지 경영을 잘못했거나 자금이 부족해 파운드리 경쟁력을 못갖췄다면, 리더를 바꾸고 정부 지원을 받아서라도 ‘미국에서 미국 기업이 반도체의 수탁생산을 해야 한다’는 임무를 인텔이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메모리는 어떨까요? D램은 한국이 세계시장의 70%, 낸드는 50%를 갖고 있습니다. D램·낸드 모두 삼성이 1위죠. 미국 입장에선 어떨까요? 중국과 가까운 한국의 기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겠지요.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다행히 메모리 업계 3위로 미국 회사인 마이크론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진 삼성전자에 맞설 능력이 못됐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본 엘피다 인수와 지난 반도체 수퍼사이클 때 메모리를 팔아 번 엄청난 자금을 개발에 쏟아부은 덕에 경쟁력을 회복해 가는 중입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메모리 수급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유일한 미국 국적의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을 더 키워야할 상황을 맞게 된거죠.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1등 삼성과 싸워 이겨 볼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겁니다.

그래도 삼성전자가 지금껏 메모리에서 이뤄놓은 것을 금방 따라잡는건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추격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일본 유일의 낸드 기업 ‘키옥시아’가 마침 매물로 나올 것 같은데, 이 키옥시아를 마이크론이 인수하면 됩니다.

이미 지난 3월 마이크론이 키옥시아 측에 인수 제안을 했다는 보도가 외신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성사 가능성이 꽤 있다는 겁니다. 일본·미국 언론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뒷받침한 것이 바이든 정부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부분을 좀 더 설명드리면요. 반도체의 메모리는 데이터의 일시적 기억을 담당하는 D램과 장기적인 기억을 담당하는 낸드가 양대 분야입니다. 현재 비중은 D램이 더 크지만, 성장률은 낸드가 더 높은 편입니다. 마이크론은 D램 점유율이 23%대로 3위지만, 1·2위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함께 3강 체제를 이루고 있죠. 반면 낸드는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6개사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1위이긴 하지만 2020년 기준 점유율 33%입니다. 19%를 차지한 키옥시아가 단독 2위이고요. 작년에 인텔(9%)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한 SK하이닉스(11%)가 합산 점유율 20%로, 키옥시아와 함께 2위권입니다. 마이크론은 작년 낸드 점유율이 11%였는데요. 키옥시아 인수에 성공만 하면 삼성전자에 육박하는 30%대로 점유율이 오르게 됩니다.

이미 마이크론은 엘피다 인수를 통해 기술개발 스피드를 높이는 효과를 봤는데, 여기에 키옥시아까지 인수한다면 일거에 삼성전자에 맞설만한 강력한 메모리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는거죠. 이건 일본과 미국 정부 간 교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긴 한데요. 바이든이 외국 정상 가운데 스가 일본 총리를 제일 먼저 백악관으로 불러 환담하면서, 키옥시아 건에 대한 언질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습니다.

키옥시아는 원래 도시바의 낸드 사업부가 분리된 회사인데요.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이 56.24%. 도시바가 40%, 일본의 안경렌즈기업 호야(HOYA)가 3.13%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베인 컨소시엄에 참여하고는 있는데요. 키옥시아가 SK하이닉스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견제에 의해 2028년까지 SK하이닉스의 의결권을 15% 이하로 제한하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습니다. 지난 4월 28일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가진 지분의 3분의 2는 키옥시아 기업공개(IPO) 이후 시장에 매각할 계획입니다. 이날 SK하이닉스 스스로도 “키옥시아는 당사의 경쟁자로,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키옥시아의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밝혔는데요. 당초에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 지분을 간접 취득한 것에는 키옥시아가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 등을 막아보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현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의 매각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지금 같은 미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제조 능력 살리기 전략이 없었고, 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금과 달리 아주 좋았더라면, 키옥시아가 SK하이닉스 손에 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반도체 지정학적인 상황, 게다가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를 자신들 의도대로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현재 키옥시아는 경영 리더십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인데다 D램에 비해 (너무 많은 플레이어 참여에 따른 출혈 경쟁 등으로 인해) 수익률이 좋지 않은 낸드만 다루기 때문에, 적자를 내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마이크론을 위시해 또다른 낸드 기업인 미국 웨스턴디지털 등이 동시에 키옥시아를 원하는 등의 이유로 몸값이 높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키옥시아의 지배주주인 베인캐피탈은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어차피 차익 실현 후 떠나길 원할테고, 2대 주주인 도시바도 내부 상황으로 인해 낸드사업을 털어낸 마당에 지분을 무한정 들고 있을 이유는 없지요. 일본·미국 정부 간의 교감과 높은 인수가격만 충족된다면, 마이크론에 팔릴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게 미국 정부가 그리는 안정적인 반도체 수급 체제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2. 메모리 인력의 충분한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핵심인력의 외부 유출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 뿐이 아닙니다. 메모리 개발·생산이 첨단화되면서 다방면의 기술이,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해지고 있는데요. 충분한 관련 인재를 확보하는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핵심 인재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게 왜 심각하냐 하면, 메모리 1등이라고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메모리는 1등이니, 앞으로 시스템반도체만 좀더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 위험하다는 거죠. 이전에 7대 3정도라고 했던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의 시장 규모가 최근에는 6대 4로, 예전보다 오히려 메모리 비중이 늘어난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몇 년간은 메모리 시장이 크게 확대될게 분명하고, 여기에 맞춰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점유율에서 밀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관련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국내 대학에서 데려올 수 있는 인원 자체가 극히 제한돼 있고요. 반도체 직접 관련뿐 아니라 공학·과학에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인재가 필요해지고 있는 반면, 그 얼마 안되는 관련 전공자들마저 반도체보다 소프트웨어·AI·게임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게 현실입니다.

마이크론은 엘피다 인수로 일본 기술·인력을 우선 흡수했고요. 본사가 있는 미국 아이다호, 그리고 실리콘밸리·일본 등 3극 체제로 양산기술을 개발하면서 삼성에 맞설 기술력을 축적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전세계 시장을 장악한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일본에 큰 거점을 만든 것이 마이크론에 더 많은 부가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엘피다만 인수한 것이 아니라, 엘피다를 통해 일본의 수많은 장비업체 네트워크까지 함께 인수한 셈이 되었으니까요.

최근의 약진은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온 엔지니어들이 많은 역할을 했는데요. 도시바, SK하이닉스,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들을 다수 채용해 미국과 일본 거점에 배치한 뒤 생산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즉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인재 부족을 호소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삼성전자의 인재가 마이크론 등으로 유출되고 있는 겁니다. 기업 간의 인재 이동은 어느정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런 소식을 들으면 과거에 일본 반도체 기업에서 외부로 인재가 유출될 때의 일을 떠올리게도 됩니다.

과거에 일본 반도체 기술자들이 해외 업체에서 일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돈 같은 유형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거든요. 뛰어난 기술자는 꼭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를 원하지요. 조직에서 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실력은 있지만 조직에서 밀리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경쟁사로 옮기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거죠.

마이크론은 본사가 미국 아이다호 주에 있지만 실리콘밸리에도 큰 거점이 있죠. 마이크론이 꼭 필요로 하는 한국 엔지니어가 있다면, 그에게 높은 연봉 뿐 아니라 자녀를 실리콘밸리 등의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하게 하고 대학 지원까지 보장하는 등의 파격 조건을 제시해 유인하기도 한다는군요.

◇3. 전투 영역은 넓디넓은데, 효자사업 수익률 떨어지면 모든게 위험해질 수도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어려움은 싸워야 할 영역이 너무 넓다는 겁니다. 메모리 1위는 확고할 것 같지만 마이크론 행보를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지요. 잘못하면 메모리 시장마저 마이크론·SK하이닉스와 3분하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또 파운드리에서는 TSMC와 끝장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투자비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본이 조 단위, 10조 단위 투자인데, 실패하면 투자 회수가 어려울 수 있는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또 스마트폰에서는 수익성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서 애플에 더 밀릴 우려가 나옵니다. 모바일 제품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구독경제·데이터플랫폼과의 연계에서도 고민이 큽니다. 중저가에선 샤오미 등 중국산의 가성비가 무섭죠. 가전에서도 중국산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범용 디스플레이의 가격경쟁력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세계시장 점유율 2위인 이미지센서에서도 현재 1위인 소니를 이겨야 합니다. 이 와중에 AP 등에서는 퀄컴 등과 경쟁해야 하고, 미래 먹을거리인 AI 반도체에서도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요.

이런 수많은 전선을 혼자 책임지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 TSMC, 인텔, 애플, 소니, 중국 스마트폰·가전·패널 업체 등 다수의 기업과 동시에 싸우고 있는 셈이죠. 다양한 전선에서 싸우는 종합 전력을 갖고 있다는게 삼성의 강점이자 대단함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얘기하면 전선이 넓어도 너무 넓습니다.

마이크론만 봐도, 미국과 일본의 메모리 관련 모든 자원을 활용할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전략에 힘입어 세를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메모리에서만 모든 힘을 쏟아부어 삼성과 격돌하면 됩니다. 삼성이 파운드리 분야에서 추격해 오자, 업계 1위 TSMC는 앞으로 3년간 무려 110조원을 투자해 초격차를 만들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업계 1등인데, 자만은 커녕 상상 초월의 투자비를 쏟아부어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겁니다. TSMC 역시 대만·일본·미국 정부의 지원과 함께 세 나라의 업계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이점을 누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금도 방심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현재는 삼성전자 실적이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앞으로일 겁니다.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였던 스마트폰의 수익력이 떨어지고 거기에 더해 마이크론 등과 경쟁 격화로 (전체 시장 확대와는 별개로) 메모리 부분의 수익력마저 떨어진다면, 제아무리 삼성이라도 이 모든 전선에 투입할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는게 쉽지 않을지 모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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