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항로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으로 본 호르무즈해협 주변 배의 정박 현황. 사진 오른쪽 끝 황토색으로 솟아있는 지역에 인접한 바다가 호르무즈해협이다. 색깔로 배의 종류를 구분했는데, 빨간색이 유조선이고 초록색이 화물선이다. 현재 호르무즈해협 안쪽 페르시아 만에 갇힌 배가 2000척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린트래픽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해협 안에 여러 척의 선박이 발이 묶인 국내 중소 선사들이 폭등한 유류비와 전쟁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경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과 화물선. /AP연합뉴스

13일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해운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내 억류된 한국 선박 26척 가운데 10척이 중소 해운사 8곳 소속이다. 연 매출 1000억원에 못 미치는 영세 선사들이다. 운항 차질에 따른 손실과 유류비·전쟁보험료·선원 위험 수당을 더하면 이들 선사는 8개사 합계 기준 매일 5억8000만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해운협회 추산이다. 이들 8사를 포함해 해협 봉쇄로 선박이 갇힌 국적 선사 17곳 전체의 하루 피해액은 21억원에 이른다. 만약 5월 말까지 전쟁이 이어질 경우 누적 피해액이 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손실의 대부분은 급등한 유류비와 전쟁 보험료다. 국제 선박유 가격은 전쟁 전 평균 1t당 513달러(싱가포르 선박유 기준, 약 76만4000원)에서 지난달 평균 937달러(약 139만5000원)로 82.7% 치솟았다. 정전 협상 소식에 한때 770달러 선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전쟁 전 대비 50%가량 비싸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운항을 못하고 해협 안에 정박 중이지만 선내 기계를 계속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기름을 바다에 뿌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지”라고 했다.

전쟁 보험료도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평시 선박 가치의 0.125~0.2% 수준이던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선박의 전쟁 위험 보험료율은 현재 최대 3~5%까지 폭등했다. 1억달러 가치의 초대형 유조선(VLCC)이 페르시아만을 한 번 운항할 때 내는 보험료는 기존 25만달러에서 200만~300만달러(약 44억7000만원)로 8~12배 뛰었다.

대형 선사들은 이런 비용을 ‘긴급유류할증료’나 ‘전쟁위험할증료’ 명목으로 운임에 반영할 수 있지만 협상력이 약한 중소 선사는 이마저도 어렵다. 한 중소 선사 관계자는 “할증료를 요구했다간 거래처가 끊길 수 있어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했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선사는 비용 폭등이 도산 위기로 직결된다. 해운업계는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된 중소 선사 지원금으로 150억원 가량을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편성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실제 배정된 예산은 14억원에 그쳤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며 “봉쇄가 길어지면 중소 선사들이 줄도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