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7시 HD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에서 특별한 ‘합체 작전’이 벌어졌다. 길이만 100m가 넘는 선체 2개를 하나로 합쳐 15만7000t급 유조선 한 척을 만드는 공사다. 경남 통영의 HSG성동조선에서 만든 길이 168m짜리 유조선 선수부(선박 앞부분)를 이 조선소로 가져와, 여기서 만든 102m짜리 선미부(선박 뒷부분)와 연결하는 것이다. 통영 조선소에서 울산까지 바닷길로 120㎞. 무게만 수만t인 선수부를 배 3척이 로프로 17시간 동안 끌고 왔다고 한다.
HD현대중공업 작업자들은 이날 오전 독(dock·선박 건조장) 안에 선체 2개를 들어가게 한 후, 대형 크레인 등을 동원해 연결 부위를 정확히 맞댄 후 연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선체 외부에 외판을 여러 개 설치해 두 선체를 고정하고, 독에 물을 빼내서 내부 보강재를 연결하는 것 등이다. 이후 배관과 전선까지 하나하나 이어 붙이는 작업 등을 이달 중순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7월 온전한 배를 완성해 선주에게 인도하는 게 목표다.
배를 조선소 두 곳에서 나눠 만든 후 레고 블록처럼 하나로 합치는 이 합체 작전의 이름은 ‘반선(半船) 프로젝트’. HD현대중공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작업 방식이다. 2021년 시작된 이른바 ‘수퍼사이클(초호황)’로 일감이 단기간 빠르게 늘어나는데 선박을 만들 독이 부족해지자 만든 분업 시스템이다. 예컨대 길이 300m에 육박하는 배를 만들 공간은 없지만, 150m 이내 크기의 선체를 만들 수 있는 자투리 공간이 있는 경우 선체의 나머지 부분은 외부에 맡기는 식이다.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수주 잔고 합산액은 2021년 864억6000만달러에서 지난해 말 1391억60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쌓인 일감을 소화하기 위해 HD현대중공업처럼 외부 조선소와 협업하거나 분업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11~12월 HSG성동조선에 중형 탱커(유조선 등) 건조를 위탁했다. 한화오션은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에서 부산·경남 정비 협력사 등에 사전 수리 작업을 맡기는 등 분업을 늘리고 있다.
◇HD현대重, 반선 건조 시도한 이유는?
HD현대중공업은 ‘반선 건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지난해 3월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공정을 재설계하기 위해서다. 선박 전체를 독 한 곳에서 만드는 게 기본 공정이었다면, 선박을 앞뒤로 나눠 만들고 결합도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와 작업 방식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엔진룸이 포함된 핵심 구역인 선미부는 울산에서 만들고,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진 않지만 부피가 크고 인력 투입이 많은 선수부는 HSG성동조선에 맡겼다.
독 안에서 선체 반쪽만 만들면 되다 보니, HD현대중공업은 나머지 여유 공간에선 다른 배 블록을 미리 만들 수 있게 됐다. 하나의 독에서 한 척만 만들던 방식이, 동시에 두 척 이상의 공정이 겹쳐 돌아가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효율이 떨어지던 독을 풀가동하게 됐고 HSG성동조선은 HD현대중공업과 협업해 새로운 수익 모델이 생기는 이점을 누리게 됐다.
◇“독 활용도를 높여라”
삼성중공업은 아예 선박 한 척을 통째로 외부에 맡기는 ‘전선(全船) 건조’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HSG성동조선에 원유 운반선 건조를 일괄 위탁해 현재까지 총 4척 규모로 협업을 확대했다. 선박의 일부만 나눠 맡기는 수준을 넘어, 건조 전 과정을 외부 조선소가 담당하는 구조다. 선박을 수주한 삼성이 품질을 보증하고 성동조선에는 선박 건조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자체 사업에 비해 수익은 적지만 전체 수주 실적을 늘리는 효과가 쏠쏠하다고 한다.
한화오션도 함정 MRO 사업에서 지역 중소 정비소와 협업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지역 조선소, 정비업체 등과 ‘함정 MRO 클러스터 협의체’를 구성해 월리 쉬라호를 포함한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6건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보안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초벌 수리를 맡기는 등 분업을 확대해 작업 효율을 높인다고 한다. 중형사들끼리의 협업도 활발하다. HJ중공업은 지난 2월 친환경 컨테이너선 8척에 들어가는 선박의 핵심 상부 구조물인 ‘데크하우스’(거주구 블록) 생산을 대선조선에 위탁했다고 밝혔다. 미 해군 MRO 수주에 적극 나서면서 독 공간이 부족해진 여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