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한 개정 상법 시행 이후, 대기업 이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기업이 민감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사회 의사록부터 보자’는 주주들의 날선 압박은 거세지고, 과거 ‘거수기’로 불렸던 사외이사들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반대나 기권표를 던지는 등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달라진 경영 환경에 맞서 기업들이 이사회 문호 좁히기에 나서면서, 기업 이사회를 둘러싼 주주들과 기업 간 공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최근 한화솔루션과 SK네트웍스에서 일어났다.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으로 논란을 빚은 한화솔루션은 소수 주주 주도로 ‘사외이사 교체’가 진행 중이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 따르면, 한화솔루션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7일 기준으로 지분 3%를 모았다고 한다. 해당 주주들은 이를 바탕으로 임시 주총을 열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소액주주 측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다.
발단은 2조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지난달 26일 한화솔루션 이사회였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대거 희석되는 데다 조달 자금 대부분이 채무 상환에 집중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20% 가까이 급락했다. 이사회 의사록을 통해 당시 7명의 이사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소수 주주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오너 복귀 안건에도 이례적 반대표
지난 2일 SK네트웍스 이사회에선 최신원 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 4명 중 2명이 각각 반대와 기권표를 던졌다. 560억원대 횡령·배임으로 수감됐다가 지난해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최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절차였다. 총 7명 이사 중 최 전 회장의 장남 최성환 사장은 불참했고, 사외이사 4명 중 한 명은 “보상 구조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했고, 다른 한 명은 “선임의 긍정적 효과는 기대하나 역할의 범위 및 영향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며 기권했다. 결국 과반(4명)이 찬성해 가결은 됐지만, 상법 개정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에 맞서 기업들은 올해 주총에서 이사회 규모를 축소시키는 정관을 잇따라 통과시키며 ‘방어진지 구축’에 나섰다. 오는 9월 집중투표제까지 시행되면, 소수 주주들이 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어 이들이 지지하는 인사의 이사회 진입이 한층 쉬워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사회 축소로 견제
리더스인덱스 분석에 따르면, 50대 그룹 상장사 269곳은 올해 주총에서 전체 이사 수를 전년 대비 47명 줄였다(1780→1733명). 사내이사의 감소폭(4.3%)이 사외이사(1.2%)보다 컸다. 사외이사 정원은 ‘이사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정관에 묶여 있지만, 사내이사는 자유롭게 줄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내이사를 줄이면 전체 이사 수가 줄고, 자연히 사외이사 선임 숫자도 감소하게 된다”고 했다. 카카오가 14명의 이사를 줄인 것을 비롯해 롯데(13명), 삼성(9명), LS(7명) 등도 이사 수를 대폭 축소했다.
이사 수 상한을 낮추거나 임기를 손본 기업도 많았다. 효성그룹은 주요 4개 계열사에서 이사 정원 상한을 16명에서 7~9명 이하로 낮췄고, 한화그룹은 7개 계열사에서 이사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임기를 늘리면 한 해에 교체되는 이사 수가 분산돼 외부 인사가 이사회 다수를 차지하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