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의 ‘특허 전쟁’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배터리 제조 기업 간 기술 점유권을 두고 벌어졌던 특허 분쟁이 배터리를 탑재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까지 향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골이 깊어지자, 배터리 업계 선발 주자들이 지식재산권을 무단 사용하는 배터리 제조사뿐만 아니라 그 배터리를 쓰는 완성차 기업에까지 칼끝을 겨누는 것이다. 특히 한·일 선발 기업이 특허를 매개로 연대 전선을 형성해 중국 후발 주자를 압박하는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최근 볼보자동차의 전기 SUV ‘EX30’을 대상으로 특허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EX30은 중국 배터리 기업 신왕다(Sunwoda)의 각형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탑재하는데, 신왕다가 LG엔솔의 ‘전극조립체 구조’ 기술 등 분리막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코팅 분리막을 활용해 층층이 쌓여 있는 전극층이 분리되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일체화된 전극조립체를 형성하는 기술로, LG엔솔이 배터리 안전성 분야에서 보유한 핵심 특허다. LG엔솔은 특허권 관리 업체 ‘튤립 이노베이션’을 통해 산업통상부 무역위원회에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도 신청했다.
LG엔솔은 앞서 신왕다 배터리를 쓰는 일본 닛산의 하이브리드 SUV ‘캐시카이’를 상대로 독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 2월에는 르노자동차의 신차 ‘그랑 콜레오스’를 대상으로 배터리팩 특허권 침해 관련 조사를 무역위에 요청했다. 완성차 업체를 전선에 끌어들인 것은 신왕다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독일에서 신왕다를 상대로 특허 침해 및 제품 회수 판결을 잇따라 받아냈지만, 신왕다가 로열티 협상에 응하지 않자 핵심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를 직접 압박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일 연합 vs 중국
LG엔솔은 전기차 세계 1위 BYD를 상대로도 유럽 통합특허법원에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소재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LG화학은 최근 배터리 양극재 세계 1위인 중국 룽바이(Ronbay)의 한국 자회사를 상대로 양극재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양극재)부터 셀, 시스템(BMS)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 단계에 걸쳐 특허를 지키기 위한 공세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특허 전쟁에는 일본 기업도 가세하고 있다. 일본의 파나소닉은 튤립 이노베이션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과 특허 5000개 이상을 한데 묶고, 중국 기업들에 ‘라이선스 계약 체결 혹은 소송’이라는 이중 압박을 공동으로 가하고 있다. 한·일 배터리 선발 기업이 특허를 매개로 연대 전선을 형성하며 중국 후발주자를 압박하는 구도로 전선이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정부 주도 ‘특허 장벽’ 추진
한일 기업들이 개별 전투를 벌이는 사이, 중국은 국가가 직접 나서 거대한 ‘특허 방어막’을 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에선 자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간 특허 분쟁도 빈번하지만, 자국 기업의 해외 특허 분쟁에 대해선 작년 5월 시행된 ‘해외 지식재산권 분쟁 처리에 관한 규정’을 통해 정부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세계 100여 곳에 해외 지식재산권 분쟁 대응 플랫폼을 설치해 중국 기업의 소송을 모니터링하고 법률적 지원을 제공한다. 2000명의 전문가 인재 풀이 소송을 돕고 있다.
중국 정부는 CATL, BYD 등 주요 기업과 대학을 묶어 조성하는 ‘특허 풀(Pool)’도 추진하고 있다. 자국 기업끼리는 특허를 공유해 비용을 절감하고, 해외 기업에는 높은 기술 장벽을 세워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전략이다. 예컨대 민관 합동으로 조성된 ‘중국 전고체 배터리 협력 혁신 플랫폼’에는 BYD, 체리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 기업과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싸우는 사이 중국은 국가 차원의 ‘특허 장성’을 쌓고 있다”며 “중국과 경쟁하려면 국가 차원의 지식재산권 보호 및 표준화 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