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철강·알루미늄·구리가 중량 기준으로 15% 이상 들어가는 완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령에 서명했다. 가전과 부품·모터·자동차 부품·구리 전선 등이 대상이다.
미 정부는 작년 2월부터 철강·알루미늄·구리가 들어간 완제품에 이중으로 관세를 부과해왔다. 제품 내 금속 부분에는 그 원가의 50%를, 나머지 부분에는 최대 15%를 각각 매기는 방식이었다. 미 백악관은 “이 방식은 행정 부담이 크고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금속 중량이 15% 이상인 완제품은 전체 가격에 25%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완제품이 저렴한 해외산 철강을 대거 사용해 미국 철강 산업을 잠식한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외형상 세율은 낮아진 것 같지만, 과세 기준이 전체 가격이 되면서 실제 납부액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냉장고·세탁기·오븐 등 주력 제품은 철강 비중이 중량 기준 30~50%에 달해, 완제품 가격 전체에 25% 관세를 고스란히 적용받는 구조가 됐다.
다만, 금속 중량이 15% 미만이거나 화장품·식품처럼 금속 함량이 미미한 품목은 면제된다. 최근 대미 수출이 폭증한 대형 변압기를 비롯해 산업기계·생산설비는 미국 제조 공급망과 AI(인공지능) 전력망 확충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2027년까지 15%만 부과하는 예외를 적용받았다. 미국산 원료만으로 만든 제품엔 세율 10%를 적용한다. 새 관세 규정은 6일 0시 1분(미 동부 기준)부터 시행된다.
◇가전 업계, 관세 증가 우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관세 변경은 수익성 측면에서 악재”라고 말했다. 본지 분석 결과, 가격이 1000달러이고 철강 함량 가치가 200달러인 세탁기의 경우, 관세가 70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철강 함량분(50% 품목관세)과 나머지(10% 관세)를 더해 총 180달러 관세를 냈지만 앞으로는 250달러로 오르게 된다. 품목관세 자체는 낮아졌지만 관세 기준이 ‘금속 함량 부분’에서 ‘제품 전체’로 바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 법인을 중심으로 제품별 손익 계산에 착수했다.
가전 업계는 오는 7월로 예정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협상도 주시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산 제품에는 상호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국내 가전 업체들은 멕시코를 핵심 우회 생산 기지로 이용해왔다. 만약 재협상에서 관세 구조가 달라지면, 어렵게 구축한 북미 공급망을 다시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중소업계 “잦은 관세 변경 혼란스러워”
자동차부품·전력기기 업계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관계자는 “볼트·너트 등은 철이 많이 들어가지만 단가 자체가 낮아 관세 부담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AI발 호황을 맞은 전력기기 업체들은 “최근 수요가 강해 가격 인상분이 최종 고객에 전가되는 구조”라며 “관세 부담 역시 일정 부분 시장에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이중 압박을 우려한다. 완제품 업체의 관세 부담이 하청 중소기업으로 전가될 수 있고, 관세 기준 자체가 수시로 바뀌어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철강 밸브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전문가 상담을 받아도 적용 세율을 명확히 알기 어렵다”고 했다. 산업통상부는 이날 업종별 협회·유관기관과 긴급 화상회의를 연 데 이어, 8일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업계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로 관세 계산이 단순해진 점은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기존에는 함량 1%에 따라 세액이 달라지고 제품 가격이 바뀔 때마다 관세도 출렁였는데, 이제는 금속 중량이 15%를 넘느냐만 따지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