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경남 창원의 효성중공업 창원1공장 내 초고압 변압기 제작 현장. 약 10층 높이에서 내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원통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사람 팔목 두께의 동선을 원통에 감아 올리고 있었다. 절연물 조립, 리드 밴딩, 건조 및 압축 등 약 20개 이상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작업은 발판 버튼을 밟아 원통을 돌리는 것 외에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동선은 순도 99.99%의 동에 절연지를 입혀 만들어진다. 원통에 감아 올려야하기 때문에 중간에 동선의 방향을 위로 틀어야 하는데 이때 동선에 손상이 없어야 한다. 중간에 매우 세밀한 용접 작업까지 필요하다. 원통은 높이 2.5m, 직경 3m 규모다.

최영상 효성중공업 초고압 변압기 구조설계팀장은 “권선 작업의 허용 가능 공차(설계와의 차이)는 단 2㎜에 불과하다“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숙련 작업자를 확보하고 있는 지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야적장에서 출하 대기중인 초고압변압기. /효성중공업 제공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른 설계값까지 다 어긋나기 때문에 작업자의 숙련도는 초고압 변압기 제작의 핵심 공정인 권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창원 공장에서 권선 작업을 하는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20년에 달한다. 가장 어려운 용접 작업까지 하기 위해서는 10년,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저전압 권선 작업을 하는데는 3년 정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여러 제조업 현장에서 로봇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것과 달리, 초고압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기기 공장은 자동화 진행 속도가 다소 더딘 편이다. 그러나 숙련 작업자의 수작업 비중이 높다는 점은 다른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장벽 역할을 하기도 한다.

초고압 변압기 시장의 호황으로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인 효성중공업은 숙련 인력을 미리 확보하며 대비하고 있다. 지난 2024년부터 기존 권선 작업 인력의 50~100% 수준을 추가 채용해 보조 작업에 투입하며 교육 중이다. 현재 창원 공장에서 권선 작업을 하는 직원은 약 100여 명, 협력사를 포함한 1~4공장 전체 인원은 3200명 수준이다.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시험실에서 테스트 중인 초고압 변압기. 일본 동경전력에서 주문한 제품. /효성중공업 제공

설계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전력기기는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어떤 규모로 전력망을 설치할 지에 따라 변압기 용량, 수정 변압, 원장 등 스펙이 모두 달라지고 이에 맞춰 각각 다르게 설계가 이뤄진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똑같은 전력기기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특히 유럽 고객사의 요구가 까다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노르웨이 고객사는 운송 구간의 터널 높이가 낮다며 터널 모양대로 변압기를 만들어달라는 조건을 붙인 적도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 업체 중 유럽을 포함한 고객사의 모든 요구 조건을 다 맞출 수 있는 곳은 3~4곳뿐이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여러 숙련 생산 인력과 설계 인력 등을 확보하고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덕에 지멘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글로벌 업체들이 독점했던 유럽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시험실에서 직원들이 초고압 변압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제공

이날 찾은 창원공장에서는 증설도 진행되고 있었다. 수출을 앞둔 초고압 변압기가 줄지어 보관된 3공장 야적장 인근 부지에는 건설 중장비가 끊임없이 오가며 작업 중이었다. 약 2만9600㎡(제곱미터)의 변압기 생산시설이 내년 7월 완공돼 가동이 본격화하면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은 약 20% 증가한다.

증설되는 시설은 향후 전력기기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초고압직류송전(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제품의 생산도 맡는다. HVDC는 장거리 송전 시 전력 손실을 줄이고,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해상풍력 단지와 수도권을 연결하는 정부의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 필수적이다.

효성중공업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 수주에 필요한 2기가와트(GW)급 HVDC 기술 개발을 내년 말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독자 개발한 200메가와트(㎿)급 전압형 HVDC 기술은 지난해 양주변전소에 적용한 바 있다.

효성중공업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공장 전경. /효성중공업

미국 시장 물량 생산 비중도 커질 전망이다. 현재는 주로 2020년 인수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생산 공장에서 현지 생산을 하고 있다. 이 공장 역시 현재 증설이 진행 중인데, 마무리되는 2028년에는 생산 능력이 50% 넘게 확대될 전망이다. 효성중공업은 2010년대 초부터 미국 765킬로볼트(kV) 초고압 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 시장은 생산 시설(슬롯) 부족으로 당장 주문해도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장재성 효성중공업 상무(창원공장장)는 “가장 업계를 잘 아는 해외 전력업계 고객들조차 호황이 5년 이상 갈지는 모르겠다고 했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서 “지금은 10년 이상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