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은 최근 미국의 구글과 MS(마이크로소프트) 등 AI(인공지능) 사업을 선도하는 빅테크 기업들과 교류를 늘리고 있다. AI 사업 진출이 목적이 아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 짓고 있는 AI 데이터센터에서 앞으로 쏟아져 나올 각종 전자 폐기물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최근 폭증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 대전환을 위한 전진 기지인 동시에, 희토류와 유가금속을 품은 고효율 도시 광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데이터센터는 설립 초기이지만 3~5년마다 고성능 서버와 GPU(그래픽처리장치) 등의 교체 시기가 돌아오면 전자 폐기물이 대거 쏟아질 예정이다. 이때 리사이클(재활용)이 하나의 거대한 신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또 미·중 갈등 속 중국이 희토류 등 각종 자원을 무기화하는 강도를 계속 높일 수 있다는 점도 데이터센터를 ‘전략 광물 보급고’로 주목하는 이유다. 전자 폐기물 재활용이 중국이나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미 전쟁부(옛 국방부) 역시 이런 맥락에서 미국 내 최대 희토류 광산업체이자 재활용 설비를 구축하고 있는 MP머티리얼즈의 지분 15%를 인수한 바 있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고려아연의 전자 폐기물 수집·처리 업체 ‘에브테라(evTerra)’의 공장. 전자 폐기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전략 광물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일상의 전자기기를 넘어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가 고효율 도시광산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고려아연

◇데이터센터는 왜 노다지 광산인가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DC에선 미 에너지부(DOE)와 150여 기관·기업이 만든 순환 경제 연구 기관 ‘ReMADE 연구소’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화두는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닌 ‘공급망 안보’였다. 엘렌 맥아더 재단의 다니엘 홀리 북미 총괄은 “전 세계 서랍 속에 방치된 노트북과 휴대폰 등 ‘휴면 기기’에만 약 670억달러(약 90조원) 규모의 자원이 매장돼 있다”며 전자 폐기물을 가장 가치 있는 ‘신규 광산’으로 정의했다.

AI 데이터센터는 특히 새롭게 등장한 고수익·고효율의 도시 광산으로 꼽힌다. 우선 반도체나 서버 등에 일반 전자기기보다 더 높은 함량의 희귀 금속이 포함돼 있다. 동일한 규격의 수만 대의 서버와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한곳에 집중돼 있다. 폐기물을 회수하는 입장에서 일정 시기에 일정량이 꾸준히 나온다. 그런 만큼 공정 자동화 포함 물류 효율이 압도적이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들도 자사 데이터센터 폐기물을 수거해 다시 신제품에 투입하는 ‘폐쇄형(Closed-loop) 순환 경제’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재활용 로봇을 투입해 폐자재에서 희토류를 회수, 이를 다시 자석으로 만들어 제품에 투입하고 있다. 작년 MP머티리얼즈와 5억달러 규모 재활용 희토류 자석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미 정부가 지원하는 핵심 광물 기업을 매개로 빅테크(애플)와 국가 안보 공급망이 묶이는 구조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역시 전자 폐기물을 재활용해 서버에 재투입하는 구조를 확대하고 있다.

◇제련·정제 기술 갖춘 韓 기업도 사업 확대

업계에 따르면 도시 광산의 자원이 될 수 있는 전자 폐기물 시장 규모는 작년 약 523억3000만달러(약 79조원)에서 2034년 약 931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 기업들도 이 분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현지에서 구글, MS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폐기물을 직접 받아 희귀 금속을 추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미국 현지에 있는 전자 폐기물 계열사(페달포인트)가 폐기물을 수거하고 테네시주에 건설을 추진 중인 현지 제련소에서 전략 광물 생산을 하는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최근 미 전쟁부가 투자한 미국 희토류 기업 리엘리먼트사와 협력해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연산 3000t 규모의 희토류 합작 공장 설립을 발표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여전히 높은 정제 비용은 넘어야 할 산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자원 통제가 강화될수록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전자 폐기물 재활용의 가치는 더 부각될 것”이라며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자원 주권’ 차원에서 세제 혜택이나 인프라 지원 등 국가 차원의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