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미국 해군이 도입 추진하는 차세대 군수 지원함의 ‘개념 설계’ 사업을 나란히 따냈다고 31일 밝혔다. 미국은 해양 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1조750억달러(약 1650조원)를 투입해 2054년까지 차세대 전투함과 군수지원함 총 364척을 새로 도입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 중 13척의 군수 지원함 사업에 한화와 삼성이 각각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함정·특수선 설계 전문 업체 ‘바르드(VARD)’와, 삼성중공업은 미국 서부 최대 조선소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NASSCO)’와 각각 팀을 꾸려 입찰에 참여해 개념 설계 수주에 성공했다.

한국 조선사가 미 군수 지원함 유지·보수·정비(MRO)를 맡은 적은 있지만 미군의 새 함정을 건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념 설계는 선박 건조를 하기 전 일종의 밑그림을 그리는 기초 과정이라, 이번 설계 수주가 함정 건조 수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개념 설계를 맡은 기업이 기본·상세 설계와 선박 건조를 잇따라 맡는 사례도 많아 기대감은 크다. 특히 이번 수주는 지난해 한미 양국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후 처음 나온 실질적인 한미 조선 협력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한화는 현지 생산, 삼성은 자동화 노하우 앞세워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은 전투함에 연료 및 군수 물자를 보급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함정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개념 설계는 함정 건조의 첫 단계다. 미 해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바탕으로 함정의 외형, 각종 무기 등 탑재 장비, 건조 비용 등을 종합 검토하며 사업 타당성을 판단하는 공정이다. 조선업계에선 설계 그 자체가 미 해군의 관점에선 국가 기밀에 준하는 영역인 만큼, 이 문턱을 넘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동맹의 마스가 효과가 나타났다는 반응도 많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개념 설계는 규모가 총 13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함정 건조 단계에서는 사업비가 13척 기준 약 9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 때문에 한화오션은 장기적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에서 함정을 건조하는 것까지 감안해 이번 수주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통해 미군 함정과 주요 구성 요소를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화오션은 2024년 인수한 필리조선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벽을 넘을 수 있다. 그래서 설계에 특화된 미국 바르드와 손을 잡은 것이다. 개념 설계 단계에선 미국 바르드가 주 계약자로 사업을 주도하고 한화 측은 협력사로서 시장 조사와 설계 보조, 생산 공법 분석, 비용 검토 등을 맡을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내 조선소를 직접 보유하지 않은 대신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건조 이력이 많은 나스코와 손을 잡았다. 미국 최대 방산 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다이내믹스의 해양 부문 자회사로, 선박 건조 경험만 80년 가까이 된다. 삼성중공업은 나스코에 용접 로봇 등을 활용한 선박 건조 자동화 기술 등 각종 노하우를 제공할 계획이다.

◇마스가 주도권 경쟁

이번 수주를 계기로 마스가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으면서 주도권 경쟁도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군수 지원함의 개념 설계는 나란히 따냈지만 이후 건조까지 따내기 위해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물밑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미 함정 건조를 맡은 첫 한국 조선소가 되기 위해,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투자를 늘리고 현지인 채용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나스코와의 협력 외에도 군함 정비 전문사 비거마린과 파트너십을 맺고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HD현대는 이번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뒤처지게 됐지만 협력 관계인 미국 최대 조선소 헌팅턴 잉걸스와 후속 사업에 계속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