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30원을 넘어서면서 환율 민감 업종인 자동차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실적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고환율로 인한 비용 부담에 수요 위축까지 겹칠 경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4.2원 오른 1519.9원으로 장을 시작해 오후 12시 48분 1535.9원을 터치했다. 2009년 3월 10일(1561원)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조짐에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평택항에 세워져 있는 수출용 자동차들./연합뉴스

고환율은 당장만 보면 자동차 업계에 호재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원화로 바꿔 장부에 기록하는데, 달러 가치가 높을수록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실제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5% 상승할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1698억원 증가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4분기에도 고환율 덕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6760억원, 7100억원씩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평균(1422원)보다 8%가량 높다. 이 수준이 연간 평균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 시 환율로만 2700억원가량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증가하게 된다. 하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평균 환율은 최근 5년 내 가장 높았던 2025년 1분기(1454원)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우호적 환율로 1분기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아는 지난 1월 2025년 경영 실적 발표 당시 올해 평균 환율을 1370원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렇게 환율 상승만으로 수익성이 개선되면 가격 경쟁력도 함께 따라온다. 가격을 인상하지 않아도 버는 돈이 늘어나는 만큼, 더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이 미국 시장에서의 관세 부담이나 판촉비 증가를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예상을 크게 벗어나고, 변동성이 커지면 단순히 호재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판매보증 충당금이 대표적 변수다. 판매보증 충당금은 무상 보증과 수리 서비스 비용으로, 판매 시점에 달러 기준으로 적립돼 고환율 환경에서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현대차의 2024년 매출액이 7.7%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도 영업이익이 6% 가까이 하락한 것도 판매보증 충당금이 증가한 영향이었다. 여기에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 물류비 상당 부분이 달러로 결제되고 있다는 점도 고환율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미국 등 해외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투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6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8월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260억달러는 원화로 환산 시 약 36조130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39조9230억원으로 4조원 가까이 늘었다.

달러 강세가 글로벌 경기 둔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자동차 업계엔 악재다. 전쟁 장기화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면서 국내 자동차 수요도 줄어들고 있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소비재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수요 위축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