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필리조선소와 한화디펜스USA가 미국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 개념설계 사업에 참여한다. 개념설계는 함정을 실제로 건조하기에 앞서 ‘어떤 성능의 배를 얼마의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초기 단계다. 2024년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지 1년 3개월 만에 미국 해군 함정 사업에 첫발을 들인 것으로,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 조선소를 기반으로 미 해군 함정 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D현대중공업도 미국 기업과 손잡고 입찰에 들어갔지만 탈락했다.
이번 사업은 미 해군이 복수 업체를 선정해 설계안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미국 서부 최대 조선소인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NASSCO)’와 함정 및 특수선 설계 회사인 ‘VARD’ 등 두 팀이 참여한다. 한화는 VARD의 협력사로 참여한다. 향후 기본·상세 설계를 거쳐 건조 사업이 별도 발주될 예정이며, 미 해군은 총 13척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향후 나스코 등 미국 조선사들과 경쟁이 불가피하지만, 미 해군 함정 설계 단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향후 입찰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화디펜스-필리조선소, 美해군 첫 수주
30일(현지 시각) 한화필리조선소와 한화디펜스USA는 함정·특수선 설계 전문업체 VARD와 미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 개념설계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VARD가 주 계약자로 사업을 이끌고, 한화 측은 시장 조사와 설계 보조, 생산 공법 분석, 비용 검토 등을 맡는다. 사업은 2027년 1분기 중 완료를 목표로 한다. HD현대중공업도 이번 개념설계 입찰에 헌팅턴잉걸스와 공동으로 참여했으나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약 1억 달러에 인수해 2024년 12월 출범시킨 필리조선소는 현재 한국 기업이 소유한 유일한 미국 조선소다. 미국의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은 미군 함정과 주요 구성 요소를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화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이 같은 제도적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이 조선소는 인수 당시 연간 건조 능력이 1척 안팎에 불과했다. 한화는 인수 직후부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 지난해 8월에는 50억 달러(약 7조원)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dock·선박 건조 시설)과 안벽을 추가 확보하고 약 12만 평 규모의 블록 생산 기지를 신설해, 중장기적으로 연간 건조 능력을 20척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개념설계는 배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비용으로 만들지 밑그림을 그리는 초기 단계다. 기능설계·기본설계를 거쳐 별도 입찰을 다시 치러야 실제 건조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미 해군 함정 설계가 국가 기밀에 준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문턱을 넘은 업체는 향후 건조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나스코도 개념설계에 참여해 실제 건조 입찰에서는 미국 내 기존 강자들과의 정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K-조선 빅3, 마스가 타고 총력전
이번 사례는 국내 조선 빅3가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 이후 한국 조선사들이 투자와 협력, 정비 사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가운데, 한화가 설계 단계에서 가장 먼저 가시적인 성과를 낸 셈이다.
HD현대는 지난해 10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상선·군함 설계·건조 협력 합의각서를 맺고, 서버러스 캐피탈·한국산업은행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 펀드 조성에 나섰다. 2035년까지 미 해군함 건조에서 연간 22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계열사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을 추진하며 대형화를 통한 미국 시장 진입 기반도 강화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군함 정비 전문 조선사 비거마린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미 해군 MRO 시장 진출을 목표로 협력에 나섰다. 지난해 12월엔 미국 조선업체 제너럴 다이내믹스 나스코와 한국 엔지니어링업체 DSEC(디섹)과 3자 사업협력 합의서를 체결해 이를 기반으로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사업 공동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최근엔 미 해군 함정 정비 협약(MSRA) 취득도 추진하며 사업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