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외무부가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현지 상황의 기류 변화 가능성이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쟁이 발발한 때부터 해협 안쪽(페르시아만)에 묶인 국적 선사 선박들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시작된 지 한 달가량 지나며 선사들도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통행을 감행하기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제벨 알리 항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27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에 묶여 있는 국적 선사의 선박은 모두 26척이다. 국내 수입 원유의 70%가 지나는 통로인 만큼 대부분이 원유 및 석유 제품 운반선이다. 선종별로는 원유 및 석유 제품 운반선 17척, 벌크선 5척, 컨테이너운반선 1척, 가스운반선 2척, 자동차운반선 1척 등이다. 해당 선박들은 HMM, 팬오션, 장금상선, SK해운 등 국내 해운 기업들이 운용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 한 달가량 지난 현재까지 아직 국적선사 선박은 단 한 척도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란이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자국과 협력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중국과 인도 국적 선박 20여척이 빠져나왔고, 그리스 선박 일부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해협을 통과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사들은 선박들이 운항 불능에 빠지면서 부담이 커져가고 있지만, 아직 배를 움직이기에는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선사들은 선박의 감가상각비, 이자 비용은 물론 승선해 있는 선원들의 추가 수당과 위험 증가에 따른 높은 보험료까지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나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 등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와 관련한 뚜렷한 방침이 나오지 않은 만큼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감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칫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천억원이 훌쩍 넘는 선박은 물론 적재된 화물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선박은 모두 3200여척으로 알려졌는데 개전 이후 해당 해역에서 22척 이상의 선박이 공격을 받은 만큼, 이들 역시 마찬가지 상황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3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과 대화에 나서면서 호르무즈 해협 항행에 안전 보장을 촉구했고,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도 한국 선박은 이란 정부와 사전 조율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양국 외교 당국이 조율 중인 만큼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배가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페르시아만에 갇힌 한국인 선원들도 대부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상황이다. 지난 26일 기준 페르시아만에 묶여 있는 한국인 선원은 모두 178명이다. 지난달 28일 전쟁 발발 당시에는 186명의 한국인 선원이 페르시아만에 묶여 있었으나 8명 줄었다. 이들은 안전에 대한 우려로 귀국을 선택했거나, 기간 근무를 하는 선원 특성상 교대를 하면서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선원들은 해상노동협약(MLC)과 선원법에 따라 고위험해역에서 하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및 오만만을 전쟁작전지역(WOA)으로 규정하고 있어 선원들은 승선을 거부할 수 있고 선주가 송환 비용을 부담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원이 하선을 선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선원들은 아직까지 국적선사의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없는 만큼 통행 가능 시기에 맞춰 빠르게 해당 지역을 벗어날 수 있도록 선박 운전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대기 중이다. 이들은 체류 기간 동안 기본급의 100%를 추가로 받고 별도의 보상금도 받는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 관련 상황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계속 쏟아지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이렇다 할 지침을 내리지 않으면 개별 선사가 항행 결정을 내리기는 부담이 매우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