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국내 항공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제 항공유 가격이 전쟁 전보다 2배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비행기를 띄울수록 손실만 커지는 상황이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유는 항공사가 쓰는 전체 비용의 20~30%에 달해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여기에 달러당 1500원 안팎에 이르는 고환율까지 겹쳤다. 항공기 리스료·정비비 등 주요 비용은 달러로 지급해야 해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항공사들은 이 여파로 비인기 노선은 물론이고 베트남 푸꾸옥이나 다낭, 미국 뉴욕 등 인기 노선마저 잇따라 축소하고 있다. 국내 2위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이 지난 16일 업계 최초로 비상 경영을 선포했고 25일에는 대형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도 잇달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항공사들의 잇단 노선 축소로 5월 초 연휴 등을 맞아 여행이나 출장 등을 계획했던 소비자들 역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동전쟁 쇼크 고스란히 받는 항공사들
25일 아시아나항공은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비상경영에 돌입한다”면서 “모든 부문에 걸쳐 비용 구조 전반을 점검하고 수익성 중심의 운영 기조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LCC인 티웨이항공도 지난 16일 비상경영을 선포했는데, 1위 기업인 대한항공과의 통합이 한창인 아시아나마저 긴축에 돌입하면서 항공업계의 위기감은 한층 더 커진 상황이다.
가장 큰 요인은 단연 항공유다. 싱가포르 주간 평균 기준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97달러(약 29만7000원)로, 전쟁 전(약 90달러)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환율도 전쟁 전 달러당 1440원 선이었지만, 지난 19일 1500원을 처음으로 돌파한 이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는 연료 거래량이 많아 나중에 기름값이 오르더라도 미리 약속한 가격에 기름을 살 수 있도록 ‘연료 헤지’를 할 수 있지만, 자금 여력이 부족한 LCC는 기름값이 오르는 충격을 맨몸으로 다 맞고 있다.
대부분 항공사는 노선 축소로 대응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5월 5일부터 5월 말까지 인천~푸꾸옥 항공편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에어프레미아도 4~5월중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 26편, 인천~호놀룰루 노선 6편, 인천발 샌프란시스코 노선 8편, 뉴욕 노선 2편 등을 모두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 북미 장거리 노선은 이 항공사의 간판 상품이었는데, 대폭 축소해야 할 정도로 비상이 걸린 셈이다. LCC 1위 제주항공도 동남아 일부 노선의 추가 비운항 여부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티웨이항공은 노선 축소 외에도 초과 수하물 요금을 인상해 손실을 줄여보기로 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상 경영을 공식 선언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전사적인 지출 삭감과 투자 축소에 나선 항공사가 여럿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측 “갤런당 95센트 추가로 내라”
아시아 주요국이 모두 항공유 가격 급등 부담을 안고 있는 점도 노선 축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 베트남 현지 항공유 공급사가 최근 이를 이유로 이례적인 수준의 가격 인상 통보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들은 돌아오는 비행에 필요한 연료를 채우기 위해 현지 공항에서 급유를 하는데, 원래 내던 항공유 가격에 더해 다음 달부터 갤런당 95센트(약 1400원) 안팎의 추가 비용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항공유 가격과 별도로 편도 기준 수백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구매하기로 미리 약정했던 항공유를 그달 다 구매하지 않으면, 남은 물량에 대해서도 일종의 보관료를 달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역시 연료 수급이 빠듯한 상황이라 나타나는 일로, 베트남 LCC인 비엣젯항공도 4월부터 나트랑·다낭·푸꾸옥 등 한국행 주요 노선 일부를 취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