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나프타(납사) 수급 불안에 대응해 나프타 수출을 전면 제한하고 나선 가운데, 공급 부족이 얼마나 해소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수출 제한이 도움은 되겠지만,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상황이다. 국내 정유 4사가 수출하던 나프타 물량 자체가 적은데다, 가격 상한 없이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릴 경우 오히려 석유화학사 입장에선 손실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27일 0시부로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안정을 위한 규정’을 고시하고 5개월간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나프타 수출은 기존 계약 물량도 예외 없이 전면 제한된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승인한 경우에만 수출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국내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 중질 나프타는 수출할 수 있다. 정부는 필요시 정유사에 나프타 생산 명령을 내리고 특정 석유화학사에 우선 공급하도록 수급 조정에도 나설 수 있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나프타분해시설(NCC·Naphtha Cracking Center)을 갖춘 석유화학 회사는 나프타를 고온·고압으로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과 같은 석유화학 원료를 만든다. 에틸렌은 이른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기초 석유화학 제품으로 플라스틱, 비닐 같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뿐 아니라 자동차·전자 등 주요 산업의 각종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국내 석유화학 회사가 지난해 필요로 한 나프타는 5900만톤이었는데 이 중 45%(2600만톤)를 수입해 사용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납사 중 54%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운송되기에 국내 납사 필요분의 25%(1437만톤)가 중동 사태의 영향권에 놓여 수급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에선 정부의 대책으로 공급 증가 효과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나프타 수출 물량이 애초 적었던 만큼 눈에 띌 만큼의 수급 개선 효과가 나타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나프타 수출량은 약 약 384만6000톤이다. 국내 생산(약 3296만1800톤)의 11.7%에 그친다.
특히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경질나프타는 국내 정유사가 이미 내수용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정유사는 주로 중질 나프타 일부를 수출했다. 경질 나프타는 NCC의 핵심 원료지만, 중질 나프타는 벤젠·톨루엔·자일렌 등으로 분해돼 페인트나 스프레이 등의 제조에 쓰일 뿐 NCC 가동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프타 수출은 제한했으나, 석유화학 회사로선 국내로 돌린 수출 물량을 국제 가격 그대로 구매해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맹점으로 지적된다. 산업통상부는 나프타 공급 가격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격평가기관이 공표하는 가격 지표를 기준으로 사업자 간 협의를 통해 정한다’고 고시했다. 정유사가 이란 공습 이후 오른 가격으로 나프타를 국내 시장에 판매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산업통상부 원자재 가격 정보에 따르면 이란 공습 직전인 2월 27일 톤당 640달러에 거래되던 나프타는 25일 기준 톤당 1029달러에 거래됐다. 이란 공습 이후 나프타는 지난 6개월 새 최고가인 톤당 1220달러(3월 23일)도 기록했을 만큼 치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 나프타 가격이 톤당 600달러선에서 1100달러대로 상승한 것도 모자라, 톤당 150달러의 프리미엄을 붙여줘야 나프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석유화학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땐 비싼 돈을 주고 나프타를 가져와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보다 가동을 중단하는 편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NCC를 계속 가동할 때 석유화학 회사가 필요한 나프타의 원료 인상분과 NCC를 멈췄을 때 들어가는 고정비를 비교했을 때 후자가 더 적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롯데케미칼 기준 국내 NCC 총량은 230만톤, 인도네시아 100만톤, 말레이시아 80만톤으로 총 410만톤이다.
증권가에선 나프타 필요량을 NCC 생산능력(CAPA)에 3.3을 곱해서 구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정상 가동 기준, 1년에 약 1350만톤, 한 달에 약 113만톤의 나프타가 필요하다.
문제는 나프타에 프리미엄이 붙었고, 환율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톤당 150달러의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계산하면 롯데케미칼이 나프타 구매로 인해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만 약 2288억원(약 1억6950만달러)가 된다. 한 석유화학 전문 애널리스트는 “환율까지 더하면 한 달 추가비용만 25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NCC 가동을 중단하면 고정비만 손실로 처리하면 된다. 통상 고정비는 감가상각비의 두 배 정도로 추산한다. 롯데케미칼의 석유화학 부분 감가상각비가 연간 약 6500억원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고정비는 약 1조2000억원이다. NCC 가동을 중단하면 한 달에 약 1000억원의 손실을 보는 셈으로 나프타를 고가에 가져와 입는 손실보다 적다.
물론 NCC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재가동할 때도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화학산업협회 추정 재가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200억원이다. 하지만 이를 더해도 나프타 가격이 올라간 상황에서 NCC를 가동하는 것보다 손실이 적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NCC 설비 가동률을 유지해 산업 전체에 타격을 주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면서도 “석유화학 회사 입장에서 손익을 생각하면 나프타를 높은 가격에 가져오면서 가동률을 30%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가동을 중단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비상 상태라 석유화학 회사가 NCC 가동을 유지해야 한다면, 정부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보전해 주든지 제품 구매처에서 가격을 인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