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주요 산업 시설에 타격을 받은 카타르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국내 철강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사들은 최근 수 년 간 전기로 사용 비중을 늘려왔는데, LNG 수급이 꼬일 경우 산업용 전기 요금이 큰 폭으로 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전기로. /현대제철 제공

25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타르의 국영 석유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전날 한국과 중국, 이탈리아, 벨기에 등과 맺은 LNG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불가항력 선언이란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배상 등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

카타르에너지는 이란의 공격으로 주요 LNG 생산 라인이 직접적 피해를 받아 수출 능력의 17%가 마비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를 복구하는 데는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카타르산(産) LNG 수입이 길게는 5년 간 지장 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카타르의 LNG 공급 계약 불가항력 선언으로 특히 철강 업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로를 통해 철강을 만드는 제철소들은 전체 비용에서 산업용 전기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LNG 수급 차질로 인해 요금이 큰 폭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업용 전기 요금 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181.9원으로 2024년 168.2원보다 13.7원(8.15%) 올랐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지난 2022년 이후 7차례 인상됐다. 최근 LNG 가격 상승세로 인해 요금이 더 빠른 속도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LNG 가격은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태다. 민간 LNG 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동북아시아 시장에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MMBtu(열량 단위)당 19.1달러로 전주 대비 19% 급등했다.

전기로-고로 복합프로세스에 사용되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기로 사진. /현대제철 제공

국내 철강사 가운데 LNG 수급 차질로 인한 전기료 부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곳으로 점쳐지는 곳은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경쟁사인 포스코에 비해 제품 생산에서 전기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철강 생산 방식에서 고로와 전기로가 각각 50%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 회사는 탄소 중립 목표에 따라 생산 체제를 기존 고로 중심에서 최근 수 년 간 전기로 중심으로 변경해왔다.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2026년은 탄소 저감 생산 체제로 본격 전환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전기로의 생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현재 충남 당진제철소에 전력을 자체 조달하기 위한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2028년 준공될 예정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오는 26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천연가스 수출입업을 정관상 사업 목적에 추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타르산 LNG 수입이 앞으로 5년 간 차질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전력 사용량이 많고 LNG 발전소 투자까지 진행한 현대제철은 머리가 아픈 상황이 됐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산업용 전기 요금 상승에 따른 타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카타르 대신 미국산 LNG 확보 등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 역시 LNG 수급 차질에 따른 전기 요금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기로 비중이 100%를 차지한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전기 요금으로만 3000억원을 지출했다. 산업용 전기료 상승과 철강 시황 악화에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일부 생산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포스코의 경우 고로 생산 비중이 거의 100%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현대제철 등에 비해 카타르산 LNG의 수급이 막혀도 직접적으로 받는 타격은 덜한 편이다. 그러나 최근 탄소 저감 등을 위해 전기로 생산 설비를 만들고 있는 데다, 현재 LNG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어 카타르산 LNG의 수급 상황과 가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한 제철소의 용광로에서 근로자가 조업하고 있다. /뉴스1

포스코는 지난 2024년 2월 전남 광양제철소에 6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250만톤(t) 규모의 대형 전기로 신설 공사를 시작했다. 이 전기로는 올 상반기부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현재의 LNG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되고 산업용 전기 요금이 계속 오를 경우 포스코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포스코가 운영 중인 자체 LNG 발전 설비는 광양제철소와 경북 포항제철소 등 2곳에 있다. 포스코는 이미 미국산 LNG의 공급 계약을 체결해 둔 상태라 카타르산 LNG의 수급이 막혀도 직접적 영향은 없다. 그러나 카타르의 LNG 생산이 계속 차질을 빚을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LNG 가격도 올라 역시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최근 철강 업계는 정부에 전기 요금 부담을 줄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철강업은 전력 소비가 절대적인 산업인데, 막대한 에너지 비용 부담이 지속된다면 국가 안보 산업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요금 부담을 완화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