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기 안산시의 한 비닐봉투, 종량제 봉투 제조 공장 내 가공 작업대의 불이 꺼져있다. /연합뉴스

중동발 전쟁으로 나프타(납사)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석유화학 기업으로부터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받아 각종 비닐,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던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단순히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생산 차질이 발생해 연쇄 충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용 포장재를 만드는 A사는 지난 23일부터 고객사에 폴리프로필렌(PP) 필름 가격을 kg당 300원씩 인상해 공급하고 있다. 내달 1일부터는 kg당 500원씩 더 올리기로 했다. 보통 PP 필름 가격이 kg당 2000원 선에서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0일 새 40%나 뛰었다. 프로필렌으로 만든 PP 필름은 투명하고, 내열성이 높아 주로 빵·과자·라면 등의 포장재로 쓰인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B사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에서 원재료인 PP, 페트(PET), 폴리에틸렌(PE)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주 해외 거래처를 찾아 공급을 문의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주변 기업들과 합심해 대규모로 물량을 주문하겠다고 했으나 미국·일본 기업에서 공급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 플라스틱 가공업체 관계자는 “수십 년간 국내 석유화학 기업과 거래해온 중소기업 입장에선 해외 주문 시도는 큰 도전이었다”며 “미국 기업은 가격을 이유로, 일본 기업은 자국 물량 배정을 이유로 모두 거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내에 나프타 공급이 막힌 영향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나프타를 나프타 분해 설비(NCC)에 넣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한다. 에틸렌은 비닐봉투, 페트병, 파이프 등의 원료가 된다. 프로필렌은 PP 필름, 마스크 필터로 재탄생한다. 즉 우리 주변에 있는 제품 대부분이 석유화학 산업에서 나온다.

롯데케미칼에 고객사에 보낸 가격 인상 안내서 중 일부./독자 제공

석유화학기업들은 기초 유분 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있다. 국내 중소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 저밀도 폴리에틸렌,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톤당 평균 단가는 각각 148만원, 163만원, 150만원이었으나, 이달 들어 전 제품 공급가가 톤당 20만원씩 올랐다. 4월 가격은 톤당 최소 30만원 이상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기초 유분을 만드는 석유화학 기업은 대기업이지만, 이를 받아 제품을 만드는 건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 업체 대표는 “제품을 제때 납품하지 못하면 원청과의 계약이 해지돼 비싸더라도 우선 재료를 구해야 한다”며 “기계를 끄고 켤 때마다 불량품이 많이 나와 최대한 끄지 않고 돌려야 하는데도 재료가 바닥나 기계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에선 보유한 나프타 재고량이 2주 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한다. 실제 전날 LG화학은 여수에 있는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 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 작업을 예정보다 앞당겨 진행했다.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도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이달 초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은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했다.

일부 석유화학 기업은 수출 물량을 국내 고객사에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물량이 충분하진 않다고 한다. 한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기초 유분 가격이 오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불가항력을 선언하면 아예 공급을 못 하게 된다”며 “1~2주 정도 지나 다른 기업들도 ‘전면 불가항력’을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