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창포리 풍력발전기 화재 사고 이틀째인 24일 발전기 타워가 심하게 훼손돼 있다. /뉴스1

지난 23일 경북 영덕군 창포리 풍력발전단지에서 발생한 풍력 발전기 화재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과 소방은 전기 합선이나 누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번 화재로 숨진 40~50대 노동자 3명은 유지·보수 등 발전기 관리를 담당하는 외주업체 소속이다. 경찰은 작업을 발주한 원청 영덕풍력과 외주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건 경위를 확인 중이다.

사고가 난 발전기의 경우 날개 내부에 별도의 조명 장치가 없어 외부에서 전선을 끌어와 조명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구조다. 소방 관계자는 “조명 장치 설치 과정에서 누전이 발생한 것인지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원인을 조사하려면 발전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발전기 안쪽에 불길이 남은 상태라서 원인 규명에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했다. 관계 당국은 발전기 철거 등 안전 대책이 마련되는 대로 현장 감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2005년 3월 가동을 시작한 이 단지의 발전기 24기는 높이 약 80m, 날개 길이 40m 규모로, 덴마크의 세계 1위 풍력터빈 제조사 베스타스(Vestas)가 납품한 설비다. 상당수가 이미 설계 수명을 넘긴 노후 상태였다. 영덕군은 노후 풍력 발전 단지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에 발전기 전면 철거를 건의하기로 했다.

그래픽=백형선

◇영덕군, 풍력 발전기 전면 철거 건의하기로

풍력 발전기 사고는 이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토의 63%가 산지인 우리나라 곳곳에 들어선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들이 노후화하면서 화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이번에 사망자를 낸 풍력 발전소 화재를 포함해, 지난 5년간 인천 영흥도, 강원 인제, 경남 양산 등 전국 8곳의 풍력 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최근 5년간 풍력발전 사고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이후 발생한 총 11건의 풍력 발전소 사고 중 8건(73%)이 화재였다. 예년에는 한 해 한 건도 드물었지만 작년엔 2건이었고, 올해는 이번 영덕 사고를 포함해 벌써 3건이 발생했다.

풍력 발전기의 발화 지점은 대부분 블레이드(날개) 뒤편 꼭대기 부분인 나셀(Nacelle)이다. 발전기·기어박스·변압기가 밀집한 나셀은 고전압 전기와 고속 회전 마찰열이 동시에 발생하는 일종의 엔진룸이다. 발열로 불똥이 튀면 바로 화재로 번지는 취약한 구조다. 풍력 발전 업계 관계자는 “초창기 기술 수준이 낮을 때 만들어진 노후 발전소는 나셀 관련 부품의 품질이 떨어져 노후화와 함께 화재 위험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미줄처럼 전국에 깔린 태양광 설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김위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62건이던 태양광 화재는 지난해 124건으로 6년 만에 2배가 됐다. 사흘에 한 번꼴이다.

해외에선 주로 광활한 평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지만, 국내에선 산지를 깎거나 건물 지붕에 설치한 경우가 많아 화재 시 대형 산불이나 인명 피해 위험이 크다. 여기에 국내 태양광 시장을 95%나 장악한 중국산 저가 부품이 노후화하면서 발열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화재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태양광 화재는 6년 새 2배…사흘에 한 번꼴

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발열 부품의 품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에 ‘친환경’이란 포장이 씌워지면서 안전 점검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발전원에서 비중이 약 2%에 불과한 풍력 발전기는 대부분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 영덕 풍력발전소처럼 산불로 이어지기 십상인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단순한 정기 점검 수준이 아닌, 화재에 취약한 나셀 내부의 자동 소화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국가 차원의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하고 산불에 특화된 초대형 헬기 등 특수 소방 장비를 주요 발전소 인근에 전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위상 의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가야 할 길이지만, 반드시 안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