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전남 여수 석유화학 단지에선 대형 설비 가동이 잇따라 중단됐다. 국내 1위 기업인 LG화학이 여수 2공장의 에틸렌을 만드는 나프타 분해 설비(NCC) 가동을 멈췄고, 인근 여천NCC에선 또 다른 기초 제품인 프로필렌 공장(OCU) 가동이 멈췄다.
이란 전쟁 여파로 대기업 설비가 실제로 멈춰서자 산업계에선 석유화학·정유 산업 등의 ‘4월 연쇄 셧다운(가동 중단)’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핵심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며 석유화학 기초 소재인 중동산(産) 나프타 수입이 끊기는 여파다. 석화 기초 제품 수급 불안이 경제 전반으로 번질 것이란 공포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중동 의존도가 높은 일본, 중국 등도 비슷하다. 그 여파로 이날 아시아 국가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수급 위기설 확산 중
석유화학 및 정유 업계는 요즘 4월 공급 대란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한창이다. LG화학과 여천NCC, 롯데케미칼처럼 선제적으로 일부 공장을 멈추며 나프타 재고를 최대한 보존해 ‘장기전’을 준비하는 기업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나프타 등을 추가 계약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일본 및 동남아시아 석유화학 기업들 모두 나프타 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쉽지 않다”며 “나프타 가격과 해상 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비닐, 페트, 각종 포장재 등이 고갈되고 사재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 식품 기업들을 불러 포장재 수급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석화용 나프타 60%를 수입으로 충당했고, 이 중 70%가 중동산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20일치 내외로 알려졌다. 일본 역시 NCC 설비 12기 중 6기가 이미 가동률을 크게 낮추며 재고 관리에 들어간 상황이다.
◇원유 수급도 불안
정유업계도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다. “사태가 길어지면 LG화학과 같은 셧다운도 불가피하다”는 곳이 많다. 롯데케미칼처럼 차라리 정기 보수를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도 많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스폿(현물 거래)으로 최대한 원유를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유가가 너무 올라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아시아 국가 다수가 원유 재고가 빠듯한 상황이라, 베트남이나 일본 등 일부 국가에 취항한 항공사의 경우, 현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급유를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혹은 항공유 단가가 지금보다 더 크게 치솟아 운항 중단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업계 우려와 관련해 이날 “원유와 나프타 공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원유의 경우 4월 초·중순까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확보한 대체 물량 2200만 배럴이 들어오고, 내달 비축유도 방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정부가 수출 제한 조치 등을 곧 내릴 예정이라, 석화 설비 가동도 최대 5월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시아 증시 출렁
아시아 금융시장은 중동발 악재가 겹치며 이날 일제히 폭락해 ‘블랙 먼데이’ 양상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6.49% 하락했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7원 급등한 달러당 1517.3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3조6000억원 이상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하며 코스피 하락을 주도했다. 일본 닛케이 지수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홍콩 항셍 지수도 각각 3% 이상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