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밀도 있게 논의된 의제 중 하나는 주요 산업의 근간인 ‘핵심 광물’이었다. 두 나라는 정상회담 직후 핵심 광물과 관련된 공동 문서만 3건을 발표했다.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로 세계 각국을 압박하는 중국에 맞서, 미·일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핵심 광물 공급망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게 골자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4일 세계 55국과 ‘포지(FORGE·지전략적 자원 협력 포럼)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중국의 희토류 및 핵심 광물 공급망 독점을 깨뜨리기 위한 일종의 무역 블록인데, 일본은 이보다 한발 더 앞서 미국과 밀착하며 대중 광물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한국은 포지의 의장국을 맡아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의장 자격으로 당시 출범식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우려도 크다. 미국 중심의 대체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비용과 중국의 보복성 제재라는 현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이 앞서가면서 이 고민은 더욱 커지게 됐다.
◇美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잰걸음
미·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광물 관련 논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를 위한 액션플랜’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일본 경제산업성, 외무성, 재무성 등이 주축인 이 계획은 미·일을 포함한 다수 국가 간의 ‘핵심 광물 무역 이니셔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에 의존하는 대신 미·일이 주도해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대체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양국은 타깃이 중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발표문에 “수십 년간 늘어난 ‘비시장적 정책과 관행’ 때문에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시장경제 진영의 핵심 광물 공급망이 ‘경제적 위압’ 등에 취약해졌다”고 지적한 것이다. 미·일은 또 포지 이니셔티브의 취지대로 중국의 광물 덤핑 전략을 방어하는 ‘광물 최저 가격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을 뺀 나라들끼리 서로 핵심 광물을 일정 가격 이상으로 거래해 서로의 수익성을 보장해주고, 자원 채굴 및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자는 뜻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난 2010년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 때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보복’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당한 기억이 있다. 당시 핵심 광물 무기화의 위력을 깨달은 일본은 1000억엔의 정부 예산을 들여 해외 광산 개발, 대체재 및 재자원화 기술 개발 등에 집중 투자하기도 했다. 2007년 90.3%까지 치솟았던 희토류 중국 의존도는 최근 70% 수준까지 낮추는 등 내부적으로 체질도 일부 개선했지만, 내부적으론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 광물 공급망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요성과 현실성 별개” 각국 딜레마
중국과 독립된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직후부터 추진해 온 어젠다다.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카드에 일격을 맞은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배제한 독립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에도 머지않아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협력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핵심 광물이 필수인 산업 비중이 더 높다. 중국에 대립각을 세웠다가 수출 규제 집중 타깃이 될 경우 산업 자체에 충격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10여 년 이상 공급망 문제를 고민해 온 일본과 달리 정부 주도의 해외 광산 투자와 장기 공급 계약이 사실상 없다시피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정제된 희토류 금속류로 한정하면 약 80%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미 행정부는 지난해 자국 희토류 개발 업체와 중국산보다 2배에 달하는 단가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며 “미국 중심 공급망에선 희토류 가격이 그만큼 더 비싸다는 뜻인데, 단가 상승과 중국의 광물 수출 규제가 겹치면 한국 산업계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논의를 외면했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보복 조치를 단행할지 모른다는 게 한국의 딜레마다. 한국과 처지가 유사한 각국은 핵심 광물의 종류 수를 서서히 확대하거나, 무역 조치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등의 ‘단계적 제도’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