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당국이 올해 2분기(4~6월)에도 현 전기료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치솟았던 국제 연료비가 내려가긴 했으나, 정부는 여전히 부채가 200조원을 웃도는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을 우선 고려하기로 했다.

한전은 23일 “2026년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이전과 동일한 ㎾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현국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 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모두 합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연료비 조정단가는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별로 전기 요금에 반영하기 위해 2021년 1분기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해당 분기 직전 3개월간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브렌트유 등의 평균 가격을 토대로 ㎾h당 ±5원 범위에서 산정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면 ㎾h당 최대 5원까지 더 받고, 반대로 내렸다면 5원까지 덜 받도록 한 것이다.

한전은 코로나 팬데믹, 공급망 차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던 2022년 3분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최대치인 +5원을 연료비 조정단가에 반영해오고 있다.

이번에 한전이 내부적으로 계산한 적정 조정단가는 ㎾h당 -11.2원이었다. 4년 전 치솟았던 국제 연료비가 하향 안정화하면서 전기 요금 인하 여력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한 번에 최대 -5원까지 반영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원칙적으로는 최소 2개 분기 동안은 조정단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그러나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전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낮추지 않고 이전과 동일하게 +5원을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2022년 국제 연료비 급등 당시 한전 부채가 200조원 넘게 쌓였기 때문이다. 한전 부채는 작년 말 기준 206조원(연결)이고 130조원에 달하는 차입금이 남아있다. 하루 이자 비용만 119억원이다.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반영한다는 게 제도 취지이긴 하나, 정부는 한전 재무 구조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연료비 조정단가 현행 유지’가 반드시 전기 요금 동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유지했어도, 정부는 나머지 다른 요금 구성 요소인 전력량 요금이나 기후환경 요금 등을 조정해 전기 요금 인상 또는 인하를 추진할 수 있다. 다만 기후부 관계자는 “현재 전기료 조정과 관련한 별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가 당분간 전기 요금을 그대로 내버려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전 부채 해소까지 갈 길이 멀고, 최근 중동 전쟁 발발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다시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70%나 급등한 산업용 전기료에 신음 중인 주요 제조업체들의 고통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h당 107.3원이던 산업용 전기료는 2023년 153.71원으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181.90원까지 급등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는 ㎾h당 190.09원이다.

다만 정부는 최근 300k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용(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을 확정한 만큼, 이 제도가 4월 16일부터 시행되면 산업용(을) 요금을 사용하는 사업장 4만여 곳 중 97%인 3만8000여 곳의 요금이 내려갈 것이란 입장이다.

낮 시간대 전기료는 높게, 밤 시간대 요금은 낮게 유지하던 관행을 깨고 ‘낮은 싸게, 밤은 비싸게’ 구조로 바꾸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태양광 발전량이 쏟아지는 낮 시간의 전력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계 부담도 완화하는 효과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