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이후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한 가운데 정유업계가 횡재세 부과, 수출 물량 제한 등 이익 제한 조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횡재세는 전쟁, 재난 등 대외 요인으로 기업이 자체 노력과 무관하게 막대한 이익을 얻을 때 추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유가가 급등하면 정유사가 기존에 보유한 원유 가치가 뛰면서 재고 평가 이익도 불어난다.

정유업계는 거꾸로 유가가 내려가면 원유 비축분 가치가 떨어져 정유사 재무 구조가 나빠지는데, 여기에 대한 보전은 없다고 반론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물량 제한까지 겹치면서 실적 악화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 정유사들의 입장이다.

19일 서울 시내의 주유소에 유가정보판이 놓여 있다./뉴스1

◇정유업계, 횡재세 도입 논의에 ‘사면초가’

20일 업계에 따르면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정유사를 겨냥한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석유 정제업자, 액화석유가스(LPG) 집단 공급 사업자가 한 해 벌어들인 이익이 직전 3개년 평균 이익보다 5억원 이상 많다면, 초과 소득에 법인세 20%를 추가 과세하는 게 골자다. 초과 이익을 얻은 기업에 추가로 세금을 징수하는 초과이익세, 이른바 ‘횡재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통상 정유사 영업이익은 고유가 시기에 불어난다. 이미 비축해 둔 원유의 재고 평가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른 만큼, 정유 제품 가격도 오르면서 정제 마진도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제 마진은 정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 운송비 등을 제외한 값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정유업계는 반복되는 횡재세 도입 논의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앞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정유사에 횡재세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2022년 당시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의 합산 영업이익은 14조689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직전 연도 4사 합산 영업이익(약 7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2배로 뛰었다.

기름값이 올라 창고에 둔 원유 가치가 오른 장부상 이익일 뿐 실제로 벌어들인 영업이익과는 다르다고 정유업계는 주장한다. 국제 유가가 하락할 땐 평가 손실을 입는데, 장부상 이익에만 세금을 매기는 게 불공평하다고도 토로한다. 과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요 절벽과 국제 유가 폭락이 겹치며 정유 4사는 약 5조1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매년 수천억 원의 설비 투자를 진행하는 등 이미 비용 부담이 크다”며 “국가 위기 상황이라 보고 정부 정책에 따르고 있는데 추가 세금까지 매기는 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부 “수출 더 줄일 수도” 압박…수출 물량 묶인 정유사들

정부가 석유 제품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점도 정유사들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분이다. 앞서 정부는 13일부터 석유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면서 정유사의 수출 물량을 전년 동기 수준으로 제한한 바 있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의 전체 수출액은 407억달러(약 61조원)로 전년 대비 9.9% 줄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필요하면 (에너지) 수출 통제도 검토해야 한다”며 추가 감축 시행을 시사하기도 했다. 최고 가격제 시행 이후 해외 판매 가격이 더 높아지면, 정유사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내 공급을 줄이고 해외 수출을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

석유 제품은 국가 4대 수출 품목에 포함될 정도로 수출 비중이 높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전량 수입한 후, 이를 정제해 생산량의 절반은 수출해 왔다. 국내 시장은 가격 안정화 압박을 받는 반면 해외 시장은 글로벌 시세를 따라가 수출하는 게 이익 측면에서 더 낫다고 한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출 물량이 줄었을 때가 한도 기준이 되다 보니, 물량 제한이 더 크게 느껴진다”며 “정부가 사업자 손실을 보전한다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없고, 내부에선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