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 배터리 ‘빅3’의 평균 공장 가동률이 동시에 50% 아래로 떨어졌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2020~2021년 세 회사가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박차를 가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세 회사 상황은 녹록지 않다. SK온은 지난달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을 받았고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이 유휴 설비 매각에 나서는 등 구조 조정에 적극적이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침체와 중국 기업 공세까지 겹친 가운데 배터리 업계 전반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난해 빅3는 연구·개발(R&D) 투자만큼은 오히려 2024년보다 더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생존을 위한 투자”란 반응이 나온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규모만으로도 감당이 어려운데, 기술력까지 앞서지 못하면 2~3년 뒤 배터리 수요가 회복되어도 부진을 면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란 것이다. 배터리 기업 한 고위 관계자는 “다른 건 다 줄여도 R&D는 줄이는 순간 죽는다는 심정”이라며 “기술이 있어야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마음으로 뛴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R&D 확대하는 K배터리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3사의 합산 R&D 지출액은 총 3조60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15% 늘었다. 각 기업이 다 사정이 어렵지만, 한 곳도 빠지지 않고 전년 대비 R&D 투자를 늘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조3275억원을 투입해 1년 전보다 22% 늘렸고, 삼성SDI도 1년 전보다 9% 늘린 지난해 1조4209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SK온도 3121억원으로 12% 이상 늘렸다.

불황 속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마련이다. ‘비용을 아끼고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쌓는’ 선택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배터리 3사는 지난해 2024년보다 약 4000억원을 R&D에 더 투자했다.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K배터리는 현재 가성비·규모에선 중국에 뒤지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선 다소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추격이 거세다. 배터리 특허의 경우 지난 2016년까지는 한국이 중국보다 특허 출원 건수가 많았지만, 2017년부터는 매년 중국에 뒤지고 있다. 특히 시장 점유율로 글로벌 1위 기업 CATL은 2025년에만 R&D에 221억위안(약 4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국내 빅3 전체 투자액보다 56% 더 많다. 배터리 시장이 침체라고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다간 2~3년 내 가격·규모·기술 모든 측면에서 중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업계 전반에 팽배하다.

◇차세대 소재와 다각화가 관건

배터리 업계에선 결국 전기차를 중심으로 배터리 수요가 다시 회복되는 2~3년 뒤 수요를 선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현재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향을 찾고 있다. 전기차 분야에선 LG에너지솔루션은 시장의 대세인 리튬 이온 배터리 대신, 나트륨을 활용한 새 배터리 연구에 나서고 있다. 리튬보다 싸고 구하기도 쉬운 나트륨을 활용해 원가 부담을 낮추려는 시도다. 다만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SK온은 액침 냉각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터리를 절연 액체에 담가 열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화재 위험을 줄인다. 상용화한다면 현재 공기 냉각 중심의 기술 트렌드를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더 안전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경쟁도 치열하다. 지금은 비싼 가격이 문제로 꼽히지만, 삼성SDI는 내년 제품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 경쟁의 또 다른 한 축은 다각화다. 배터리 수요가 로봇과 데이터센터, 드론 등으로 확산되는 흐름에 누가 더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컨대 로봇에는 작은 크기에서 높은 출력을 내는 배터리가, 데이터센터에는 정전 시 즉각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 기술 개발이 필수다. 선제적 투자를 통한 기술 확보 없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