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핵심 부품 기업 로보티즈가 5지(指)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을 확대하며 로봇 하드웨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봇 관절 구동 장치인 액추에이터를 주력으로 성장해 온 회사가 로봇 손과 로봇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피지컬 AI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로봇 부품사들은 점차 단순 부품 공급을 넘어 고부가가치 모듈과 완제품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액추에이터는 전기 신호를 물리적 움직임으로 전환하는 로봇 핵심 부품으로, 로봇의 모든 동작을 제어해 전체 원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휴머노이드 한 대엔 통상 여러 종류의 액추에이터 50개 이상이 들어간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 기업이 주도해 온 이 부품 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수십 년간 쌓아온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주요 로봇 기업의 공급망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빅테크 줄 선 5지 로봇… “조립하는 대로 나가”
18일 업계에 따르면 로보티즈는 5지 로봇 손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 ‘AI 워커’를 구글, 애플을 비롯한 빅테크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 연구 기관에 납품하고 있다. 사람 손을 본뜬 다섯 손가락을 양팔에 달고, 머리에는 카메라, 다리엔 바퀴를 단 이 로봇은 현재 공급 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다.
로보티즈 관계자는 “액추에이터를 구매해온 고객사들이 로봇 하드웨어도 연이어 주문하고 있다”며 “조립하는 대로 물량이 나가고 있어 양산 규모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로보티즈는 수요 확대에 따라 올해 AI 워커 판매량이 200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빅테크의 러브콜이 잇따르는 데엔 초소형 액추에이터 원천 기술을 활용한 구동 방식 차별화와 부품 내재화에 따른 원가 절감이 주효했다. 로보티즈는 손가락 관절마다 자체 개발한 초소형 액추에이터 20개를 직접 심는 ‘순수 모터’ 방식으로 로봇 손을 구동한다.
반면 테슬라 옵티머스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이 채택한 로봇 손은 모터가 와이어를 당겨 손가락을 제어하는 ‘케이블 드리븐’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손가락을 가늘게 만들 수 있어 경량화에 유리하지만 무거운 물체를 들면 와이어가 늘어나 5~6주마다 부품을 교체해야 해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로보티즈 제품은 와이어 없이 전류 제어 기반으로 작동해 이 같은 유지·보수 문제를 해결하고 내구성과 정밀도를 높였다.
여기에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부터 완제품까지 전 과정을 내재화해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 현재 고성능 로봇 손 가격은 대개 수천만원에 달하지만 로보티즈의 로봇 손은 880만원이다. 지난 1월 출시된 이후 두 달이 채 안 됐으나 빅테크발 주문이 몰리고 있다. 이 로봇 손을 장착한 AI 워커 완제품 역시 수억원을 호가하는 경쟁사 로봇 대비 저렴한 9600만원 수준이다.
◇부품→완제품 확장 배경엔 ‘데이터 전쟁’
지난 27년간 액추에이터 부품 공급에 주력해 온 로보티즈가 완제품 로봇 하드웨어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핵심 목적은 데이터 확보다.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서는 실제 로봇의 물리적 움직임이 담긴 액션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이는 구동 가능한 하드웨어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 로보티즈는 자체 액추에이터 제어 프로그램을 통해 20년 전부터 축적해 온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드웨어를 고도화하고, 이를 실제 제조 및 물류 현장에 투입해 실증 데이터를 쌓겠다는 구상이다.
급증하는 수요에 발맞춰 해외 생산 거점 확충도 서두르고 있다. 인건비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인 우즈베키스탄에 생산 기지를 마련해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급성장하는 중국과 미국 시장을 겨냥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7월 공장을 완공하고 4분기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액추에이터를 비롯해 로봇 손과 AI 워커를 모두 생산할 예정이다. 액추에이터 생산 능력만 기존 30만대에서 300만대로 10배 늘어난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 제품 판매 가격도 30~40% 낮춘다는 목표다.
◇韓 감속기 업체들도 외연 확대 나서
다른 국내 로봇 부품 기업들도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기업이 독점하던 로봇 관절용 정밀 감속기 시장에서 국산화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감속기는 모터의 회전 속도를 줄여 로봇이 강한 힘을 내고 정밀한 동작을 하도록 돕는 핵심 장치다. 이들은 글로벌 로봇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단품 공급을 넘어 구동 모듈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모닉 감속기를 처음 국산화한 에스비비테크는 충남 천안에 액추에이터 전용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 정밀 감속기 3종(하모닉·유성·RV)을 모두 양산하는 에스피지도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를 통합한 휴머노이드용 액추에이터를 개발해 올해 상반기 양산 체제 구축에 돌입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035년 300억~500억달러(약44조~75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확대와 함께 핵심 부품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단순 부품을 넘어 모듈이나 하드웨어 영역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로봇 산업 밸류체인 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