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05% 증가한 6.1조원으로, 시장 기대를 넘어서는 우수한 성과를 달성했습니다…(중략)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MASGA 추진 등 대외 활동 및 투자 증가로 책임 경영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될 예정입니다.”
HD현대는 최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내면서, 이사의 보수 한도를 기존 40억원에서 55억원으로 올리는 안건 밑에 900여자(字)에 이르는 설명문을 붙였다. 지난해 주총 때는 이사 보수 한도를 27억에서 40억원으로 올리는 안건을 내면서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1년 새 달라진 것이다.
LG는 올해 이사 보수 한도(170억원)를 작년과 동결하면서 A4 용지 3장 분량(2400여자)으로 보수 산정 기준을 세세히 밝혔다. 사내 이사의 상여와 급여는 어떻게 정하는지, 대표이사와 일반 임원의 보수는 얼마나 차등을 둘지 등을 상세히 적었다. 또 다른 국내 지주사와 비교하면 어떻고, 최근 3년간 실제 얼마를 지급했는지 등까지 담아 표를 4개나 그렸다.
◇한층 어려워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이달 주총 시즌을 앞두고 주요 대기업들이 일제히 낮은 자세로 소수 주주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에서 이런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사 임명이나 주주들이 민감해하는 배당 정책 등과 달리, 보수 한도 승인은 사실 주총에서 손쉽게 넘어가는 안건 중 하나였다. 별다른 설명 없이 한도를 올려도 주총 막바지에 안건이 쉽게 통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왜 보수를 올려야 하는지 그간의 회사 성과 등 구체적인 근거까지 제시하면서, 주주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기업들이 대거 늘었다.
작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소수 주주들의 힘이 세진 데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이사인 주주가 이사진의 보수 한도를 ‘셀프 승인’하는 것은 위법이란 판결까지 나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해 작년에 승인된 이사 보수 한도 안건 333건을 분석해 보니, 32개사의 주총 표결 결과가 가결에서 부결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판례에 따라 이사인 주주의 의결권이 묶인 상태에서, 소수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올해 주총에선 부결이 잇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셀프 삭감’도 잇따르고 있다. SK는 지난해 180억원이었던 보수 한도를 올해 160억원으로 줄이기로 했고, 구속 중인 총수가 보수를 받아 논란이 됐던 한국앤컴퍼니는 이번에 이사가 2명 늘어나는데도 보수 한도를 20억원 낮췄다. 재계 관계자는 “소수 주주를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약 안건이 부결되면 이사들은 보수를 한 푼도 못 받는 법적 공백 상태에 빠지고, 임시 주총을 다시 여는 과정에서 주도권이 소수 주주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주 제안, 이제 대충 못 넘겨”
특히 작년 상법 1차 개정으로 이사들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된 만큼, 기업들은 이번 주총에서 주주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올 주총을 앞두고 이사 선임,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현금 배당 확대 등 각종 주주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린은 최근 발간한 주총 실무 가이드에서 “주주 제안을 단순히 거부하기보다는 내용의 합리성을 검토하고 수용 가능한 부분은 적극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수용이 어려운 경우, 재무 분석이나 외부 전문가 의견서 등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명확히 소명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처럼 ‘주주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어물쩍 넘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번 주총 이후에도 개정 상법에 따라 올해 9월부터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내년 1월에는 ‘전자 주총 의무화’ 등이 추가 시행된다. 내년 주총엔 사측과 소수 주주 간 줄다리기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법인 세종 이원 변호사는 “기업들은 주주 행동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동시에 주주와도 적극 소통하면서, 리스크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