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1일(현지 시각)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16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연방대법원 판결로 무효화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 구조를 다시 재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 정책, 관행’을 문제 삼아,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행정부에 보장한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는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등이 무효가 된 직후부터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150일 간 ‘글로벌 관세(현재 10%)’를 부과하고 이후 301조 조사를 통한 국별 관세 부과에 나설 것이란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301조 조사는 통상 1년 가량 걸리지만, 이번 USTR 조사는 7월 전 마무리 돼 글로벌 관세를 대체할 새 관세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美 “한국, 차·기계·철강 글로벌 흑자” 주장
미 무역대표부(USTR)는 16국을 대상으로한 무역법 301조 개시 사실을 관보를 통해 밝히면서, 그 근거로는 ‘제조업 분야의 과잉 생산’을 꼽았다.
특히 국가별로 301조 조사 개시 이유를 밝히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별도로 “대규모 혹은 지속적 무역흑자로 구조적 과잉생산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자기기, 자동차·자동차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등 수출을 중심으로 글로벌 상품무역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한국 무역흑자는2023년 100억 적자에서 2024년 520억달러로 크게 확대됐다”며 “대미 양자 상품·서비스 무역흑자는 2024년 560억달러로 증가했으며, 2025년 6월까지 직전 4개 분기 동안 약 490억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등도 명시했다.
“한국 정부는 석유화학 부문의 생산능력 축소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중국발 공급 과잉을 이유로 추진 중인 석유화학 구조개편 사업을 지칭한 것이다.
USTR은 디지털 장벽, 쌀이나 수산물 등의 시장 접근성 등 기존에 문제삼던 비관세 장벽과 관련한 추가 조사도 별도로 예고해 둔 상태다.
◇韓, 기존 협의한 상호관세 틀 유지 주력할 듯
우리 정부는 그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나는 것은 ‘구조적 과잉생산’에 기인한 게 아니라는 점과 한국이 미 경제에 기여한 점 등을 설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업의 미국 현지 생산시설 투자 등이 늘며 부품 및 원자재 수출이 불가피하게 늘어난 측면도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USTR의 301조 조사에 대응하며, 기존 한미 무역합의에서 규정한 관세 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주력할 입장으로 전해졌다. 타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보장받겠다는 취지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철강과 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 분야가 미국의 ‘과잉 생산’ 논리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는 데다, USTR이 기존 한미 무역합의 타결에서 상대적으로 역할이 적었던 만큼, 이번 301조 조사를 빌미로 각국에 추가 압박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301조 조사로 미국은 관세 외에도 수입물량 제한, 쿼터 시행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협상 과정에서 자국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자동차나 반도체 등에 대해 현지 생산 및 투자 확대를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기업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적극 설명하고 미 제조업 재건 등에 협력할 의지를 적극 보여야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