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3사가 지난해 일제히 적자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미국 정부가 현지 생산 물량에 비례해 지급하는 보조금(AMPC) 약 2조6400억원을 걷어내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합산 적자 규모만 약 4조2690억원에 이른다.
반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자국 정부로부터 연간 최소 2조8000억원을 지원받으며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이란 사태 장기화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전기차 수요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K배터리가 그 반등의 파도를 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금 당장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수요가 돌아왔을 때 한국 공장은 멈춰 있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K배터리 3사, 美 보조금 빼면 적자 4조원
K배터리 위기의 진원지 중 하나는 미국이다. 배터리 3사는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해 현지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공장 건설에 수조 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며 ‘내연차 U턴’을 선언하자,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사업을 잇따라 축소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K배터리 업계는 단순한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이 아닌 구조적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와중에 미국 외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공세는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K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2022년 53.4%에서 지난해 36.5%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중국 CATL과 BYD의 점유율은 37.9%로 한국을 앞질렀다. K배터리 3사의 공장 가동률이 50% 수준이지만 CATL과 BYD는 90%에 이르는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격차의 배경엔 중국 정부의 압도적인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16년간 전기차 산업에 총 2310억달러(약 330조원)를 투자했다. BYD와 CATL은 2023년과 지난해 각각 연간 최소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BYD의 지난해 순이익 55억5000만달러 중 26%가 중국 정부 직접 보조금이었다.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중국산 전기차들은 이제 한국 시장을 거세게 공략하고 있다.
◇“적자 기업도 혜택 있는 지원책 필요”
한국 3사는 혁신 투자는커녕 생존 방어에 급급한 처지다. SK온은 지난달 국내에서 2년 만에 재차 희망퇴직 접수를 시작하고, 미 조지아주 공장 직원 2566명 중 958명(37%)을 해고했다.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각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부문 부실이 그룹의 다른 사업으로 번지는 걸 차단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배터리 기업 최고위 임원은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집중해도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중국을 이기기 어려운데, 지금처럼 수비만 해서는 막상 배터리 호황이 와도 과실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업계 안팎에선 과감한 정부 지원을 통해 지금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국가전략기술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기업에 생산비 일부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업계는 회의적이다. 3사 모두 적자여서 깎아줄 세금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업계는 세액 공제분을 현금으로 직접 돌려주는 ‘직접 환급’ 방식이나 한시적 생산 보조금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지난달 기획예산처가 비공개로 개최한 재정지원간담회에서 “배터리 및 소재사를 대상으로 한시적 생산 보조금 지급을 검토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