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K2 전차 등을 수출한 현대로템이 9일 ‘K방산 상생 협력 추진 전략’을 공개했다. 부품 국산화에 성공한 후 해외 계약을 따내면 국산화에 따른 비용 절감액을 협력사와 나누는 ‘상생 성과 공유제’를 신설하고, 협력사 투자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게 핵심이다. 협력사의 미래 무기 개발, 국산화 R&D(연구·개발)에 대한 지원도 2년간 총 2000억원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까지 국내 방산 ‘빅4’도 잇따라 협력사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K방산 업계에서 상생이 화두로 떠올랐다. 해외 대형 계약을 잇따라 따내며 핵심 수출 산업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협력사 공급망의 안정성과 기술력이 수출 경쟁력의 실질적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탱크 한 대, 미사일 한 발에도 수백 개 협력사의 소재·부품·기술이 들어가는 구조에서 공급망이 흔들리면 수출도 흔들린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 조사까지 맞물리면서 업계의 행보가 빨라졌다.
◇국산화 달성해 비용 절감…협력사에 환원
방산 업계의 원·하청 구조는 일반 제조업보다 훨씬 촘촘하고 깊다. K2 전차 한 대를 완성하려면 엔진·관측 장비·통신 장비 등 부품 수천 개가 필요하고, 이를 납품하는 협력사만 수백 곳에 달한다. 미사일,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방산 시장에서 발주자는 정부 하나뿐이다. 정부가 계약 단가를 정하면, 대기업은 그 범위 안에서 협력사 납품 단가를 정한다. 대기업 외에 납품처를 찾기 어려운 협력사로선 불리한 조건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방위산업 발전 토론회와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이슈가 됐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방산 기업은 세금이 투입되는 분야인 만큼 생태계 전체를 살리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국감에선 K방산 호황에도 대기업 이익 쏠림 현상에 따른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방산 생태계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기류는 연말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요 방산 4사에 대한 조사로 이어졌다.
◇방산 수출 확대... 협력사 공급망 부각
이를 계기로 방산 대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연간 300억원 규모의 ‘혁신 성과 공유제’를 도입했다. 협력사가 첨단 방산 기술 개발에 참여할 경우 연구·개발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개발 성과와 지식재산권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동반성장펀드도 기존 5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확대했다.
KAI는 단가 인상을 포함해 수백억원 규모 자금을 지원했고, 중소 협력사에 낮은 이율로 장비 구매 비용도 연 100억원 규모로 빌려주고 있다. LIG넥스원은 2024년부터 원재료 가격 변동을 납품 대금에 반영하는 ‘납품 대금 연동제’를 도입해 공정위로부터 ‘하도급 대금 연동 우수 기업’ 표창도 받았다. 주요 협력사 모임을 중심으로 해외 공동 수주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압박이 촉진제가 되기는 했지만, 상생을 통해 ‘낙수 효과’를 확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방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대기업 중심 구조를 넘어 협력사까지 경쟁력을 갖춘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수”라며 “협력사 지원 확대는 장기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