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정 상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이달부터 시작되는 각 기업의 주주총회가 기업과 주주 간 역대급 ‘수싸움’의 현장이 될 전망이다.
소수 주주의 권한이 강화된 개정 상법이 적용되기 전 마지막 주총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위해 이사회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방파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흐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경영권 안정을 위해 이들이 한꺼번에 이사회에 입성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주주들은 기업들이 법의 취지를 무력화하지 않도록 견제에 나서면서, 어느 때보다 격렬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상법 개정의 세 핵심 축인 ‘3% 룰’(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 3% 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동시에 적용받는 대규모 상장사일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사 임기 바꾸고, 이사회 축소
이번 주총에서 기업들이 내놓을 대표적인 방어 전략은 ‘이사 임기 변경’과 ‘이사 수 축소’다. 집중투표제에서는 한 번에 선임되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 주주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후보 1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동시에 선임되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 주주가 유리해진다. 이를 분산하기 위해 임기 구조를 손보는 것이다.
삼성SDS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는 안건을 올렸다. 임기를 1~3년으로 유연하게 바꾼 것이다. 한화그룹은 더 적극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한 10여 계열사가 일제히 현행 ‘2년 내’인 임기를 ‘3년 혹은 3년 내’로 늘리는 정관 변경안을 제출했다. 이사의 퇴임 시점을 분산시켜 한 주총에서 선임하는 이사 수를 최소화하려는 포석이다. 이에 대해 한화는 “임기를 2년으로 정하자, 이사들이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중장기적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임기를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사회 규모를 줄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E&A는 이사를 각 1명씩 줄이기로 했고, 한화갤러리아는 이사회 정원 상한을 13명에서 7명으로 대폭 낮췄다. 이사회 규모가 작을수록 주주 제안을 통한 다수의 이사 선임 시도가 사전에 차단되는 효과가 있다.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기업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이다. 기존에는 이사를 일괄 선출한 뒤 그중 감사위원을 정해 대주주가 자신의 의결권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따로 뽑아야 하고, 이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합산 3%로 제한된다. 대주주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주총에서 감사위원을 선제적으로 선임하거나, 감사위원회 정원 자체를 확대해 균형을 맞추려는 사례가 잇따를 전망이다.
◇‘이사 보수 한도’도 뜨거운 감자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들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된 상황에서, 소수 주주들과 행동주의 펀드의 반격도 거셀 전망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달 ‘기업의 우회 전략 vs 일반 주주의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기업들의 예상 방어 전략을 공유한 뒤, 주주들의 철저한 감시를 당부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한화그룹의 이사 수, 임기 변경 안건을 비판하며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은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특히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이 최대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매년 주총에서 으레 통과되는 안건이지만, 작년 4월 대법원이 이사인 주주가 자신의 보수 한도를 스스로 승인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ESG연구소는 최근 펴낸 주총 전망 보고서에서, 밸류업 프로그램도 제대로 안 하는 기업이 보수 한도만 증액하려는 경우 주주들의 강력한 견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3차 상법 개정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이번 주총은 제도가 실제로 작용하는지를 시험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