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전북 새만금을 인공지능(AI)과 로봇, 수소가 결합된 미래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낙점하고 9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125조2000억원 규모의 국내 중장기 투자 계획을 구체화한 첫 사례다. 내년부터 새만금 34만평(112만㎡) 부지에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단지,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수전해(水電解)와 태양광 발전 설비 등을 짓는다.

현대차의 투자 발표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호남권 투자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나왔다. 다만 간척지 특성상 상대적으로 약한 지반과 재생 에너지 중심의 불안정한 전력 구조 등은 과제로 거론된다.

李대통령 “현대차 대결단에 감사… 정주영 회장님도 자랑스러워 하실 것” 27일 전북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투자 협약식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의 과감한 결단에 정부는 더 과감한 지원으로 화답하겠다”고 했고,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0.67% 올랐다. 왼쪽부터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 대통령, 정 회장,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그래픽=양인성

◇2029년 ‘연 3만대 로봇 공장’ 가동

현대차그룹은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정부·전북도와 ‘새만금 로봇·수소 첨단 산업 육성 및 AI 수소 시티 조성을 위한 투자 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했다. 현대차 측은 이번 투자를 통해 약 16조원의 경제 유발 효과와 7만1000명의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역에 가고 싶어도 불편하고 불안해 갈 수가 없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정부를 믿고 상당한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대결단을 해준 현대차그룹에 감사드린다”며 “(이번 투자를)정주영 회장님께서도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업의 과감한 결단에 정부는 더 과감한 지원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기대에 힘입어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일 대비 10.67% 오른 67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고, 계열사인 현대제철도 20% 가까이 급등했다.

이번 투자의 핵심은 5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AI 데이터센터’다. 로봇,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스마트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현대차는 향후 GPU(그래픽 처리 장치) 5만장급의 연산 능력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 분야에도 4000억원을 투입한다. 연 3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로봇 공장과 부품 단지로 구성된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 2029년부터 가동한다.

또 에너지 공급을 위해 1조원 규모의 200메가와트(㎿)급 수전해 설비와 함께, 1조3000억원 규모의 기가와트(GW)급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을 데이터센터와 수전해 설비의 핵심 전력원으로 쓰겠다는 복안이다.

4000억원을 투입해 ‘지산지소(地産地消)’형 AI 수소 시티도 조성한다. 정부가 ‘새만금 스마트 수변 도시’를 위해 기반 시설을 조성 중인 200만평(6.6㎢) 부지에 짓는 것이다. 인근 수전해 설비에서 생산한 청정 수소를 도시 전체에 공급하고, 교통·물류 등에 ‘피지컬 AI’를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전문가 “약한 지반, 전력 문제 관건”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만금 부지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간척지인데다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 제조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초고성능 연산 장비가 집약된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냉각, 네트워크 자원이 풍부한 것은 물론 지진, 홍수, 태풍 등 재해로부터의 안전이 입지 선정의 핵심으로 꼽힌다. 또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설 과정에서 막대한 철골이 투입되는 데다, 냉각 장치까지 더해져 면적당 하중이 일반 건축물보다 높다. 이 때문에 간척지 위에 데이터센터를 세우려면 기초 보강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새만금은 간척 지반 특성상 흙 속에 염도가 높은 바닷물이 스며 있어 지반이 비교적 약한 편”이라며 “게다가 밤낮으로 바닷바람이 부는 특성상, 이곳에 데이터센터나 로봇 제조 공장을 짓게 되면 장비 부식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용수(用水)와 전력 문제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 에너지 분야 교수는 “새만금 지역은 기저 전력으로부터 24시간 365일 전기를 공급받기 어려운 구조”라며 “구름이 낄 때 태양광 발전량이 떨어지면 ESS(에너지 저장 장치)만으로 데이터센터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백업 전력 확충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