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에 전시된 SK하이닉스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뉴스1

미국이 지난 10개월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부과해 온 상호 관세가 불법이란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우리 산업계에선 환영하기는커녕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상호 관세 무효화를 만회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조치가 잇따를 가능성 때문이다.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또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는 종전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 혼란이 크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이번 ‘상호 관세 리셋 사태’를 점검해 봤다.

Q1. 자동차·바이오·의료기기 등 품목 관세는 어떻게 되나?

한·미 협상 핵심 현안이었던 자동차·부품(15%), 철강·알루미늄·구리(50%) 등에 적용되는 품목 관세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다. 연방 대법원은 미 정부 조치 중 ‘국제긴급경제권한법’을 근거로 한 상호 관세 부과만 불법이라고 봤지, 무역확장법 232조에 기반한 품목 관세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조치가 현재 품목 관세 산정 중인 우리 주력 수출품 반도체, 바이오(의약품)와 의료기기, 산업 기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특정 품목의 관세를 대폭 높이거나 적용 대상을 늘려 상호 관세로 줄어드는 세수를 메우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5%의 ‘글로벌 관세’를 새로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례처럼 트럼프 정부가 언제, 어떤 관세 카드를 또 꺼낼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래픽=김의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요 교역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대안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같은날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질문 받을 기자를 지목하는 모습./AP 연합뉴스

Q2. 트럼프 ‘새 관세’는 어떻게 적용되나?

새로 등장한 ‘글로벌 관세’는 상호 관세 도입 전 각국에 적용되는 기본 관세에 15% 관세를 추가로 내야 하는 구조다. 한국 입장에선 종전과 변화가 없는 셈이다. 다만 이 관세 적용 기간은 법에 따라 최장 150일로 제한된다.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징검다리 관세’란 말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단 새 관세로 현상 유지를 하면서 세수를 확보할 새로운 방법을 찾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관세 자체는 불리하지만은 않다. 상호 관세 도입 전 한국은 미국과의 FTA를 통해 대부분 품목에서 무관세가 적용돼 왔다. 경쟁국인 일본·EU(유럽연합)는 평균 3% 안팎의 기본 관세가 적용됐다. 새로운 관세 체계에서는 한국이 오히려 조금이나마 단기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Q3. 대미 협상·투자는 어떻게 하나?

우리 정부가 한미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일단 계획대로 추진하는 게 낫다는 전망이 많다. 지난 협상 때 대미 투자를 대가로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자동차·바이오 등에 대한 품목 관세를 최대 15%로 한다는 약속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또 상호 관세가 없어지는 걸 빌미로 트럼프 정부가 추가 요구를 할 수 있는 데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우리 기업들이 한·미 협상을 계기로 이미 시작한 미국 사업도 적지 않다.

Q4. 추가 압박 우려는?

전문가들은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한국·일본·EU 등을 중심으로 비관세 조치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20일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가 주요 교역국 대부분을 대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면서다. 이 조항은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문제 삼아 관세를 매기는 근거다. 온라인 플랫폼법, 구글 정밀 지도 반출 등 국내 규제들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수입 통관에 드는 수수료를 증액하는 등 비관세 조치로 관세 공백을 메울 우려도 크다.

Q5. 앞으로 우리의 대응 전략은?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통상 압박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진행 중인 한·미 투자 협상을 빠르고 원만하게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301조 등 여러 카드를 병행해서 꺼내고 있는 만큼 대응 논리를 촘촘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최소 상호 관세 조치 이전보다 기업들이 더 불리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