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HD현대중공업의 사우디아라비아 호위함 사업 수주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조선사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수주전에 뛰어들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의 WDS 2026 부스 조감도./HD현대중공업 제공

23일 HD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사우디 왕립 해군은 지난 2020년 6000톤(t)급 호위함 5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규모는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사업은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현지에서의 건조 역량과 정비(MRO) 체계를 내재화하는 조선업 역량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다만 정보제공요청서(RFI) 발송 등 무기 도입 사업의 공식 절차는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말쯤 사우디 정부가 각 국의 방위산업체들을 대상으로 RFI를 발송할 것으로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17년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람프렐, 바흐리 등과 합작해 IMI 조선소를 설립했다. 사우디 동부 킹살만 산업 단지에 조성된 이 조선소는 연간 최대 40척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로 올해 말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유조선 건조 등 기술을 이전했고, 로열티도 받는다.

일찌감치 사우디 조선 시장에 진출한 덕에 업계에서는 사우디의 신규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사우디 세계 방산 전시회(WDS 2026)에서 페루 시마조선소 현지 건조 사례와 MRO 실적도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이 개발하고 있는 사우디용 수출형 모델 HDF-6000의 조감도. /HD현대중공업 제공

그러나 최근 프랑스 나발그룹, 스페인 나반티아,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등 유럽 조선사들이 사우디 신규 호위함 도입 사업 수주전에 가세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특히 나발그룹은 2000년대 초반 사우디에 리야드급(4700~4800t) 호위함을 인도한 실적이 있다.

프랑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와의 접촉을 늘리는 한편 절충 교역 확대와 군사 협력을 담은 패키지를 구성하는 등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사실상 한국과 프랑스의 맞대결”이라며 “정부의 외교력과 지원이 판세를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스페인 나반티아도 지난 2018년 2200t급 호위함 사업을 목표로 사우디 정부와 설립한 합작 법인을 앞세우며 수주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중공업이 띄운 승부수는 ‘기술’과 ‘현지화’ 두 축이다. HD현대중공업이 제안할 모델은 수출형 대형 호위함 HDF-6000이다. HDF-6000은 수직 발사대 48셀과 대함 미사일 8발, 근접 방어 무기 체계(CIWS),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MFR) 등 고성능 탐지 및 무장을 탑재한 대양(大洋) 작전용 함정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HD현대 제공)

HD현대중공업은 사우디의 작전 반경이 넓어지고 있는 점을 반영해 국내 호위함보다 성능과 규모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작전 반경을 홍해와 페르시아만 외에 아라비아 해협을 넘어 인도·태평양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MI 조선소도 활용할 계획이다. 프랑스가 과거 사우디에 함정을 수출한 실적이 있지만, HD현대중공업은 함정 설계와 건조, MRO 역량 뿐 아니라 공급망까지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선도함(1번함)은 국내에서 개발·건조하고 2~4번 후속함은 IMI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안과 사우디 인력 파견 등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현지화 기반을 갖춘 것은 분명한 강점”이라면서도 “유럽 국가들도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어 HD현대중공업의 수주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