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 관세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대한 국가별 관세에 대해 위법으로 판결했다. IEEPA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경제를 통제할 권한을 부여하지만, 이게 곧 과세 권한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번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무엇이 바뀌는지,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리했다.
Q1. 이번 판결로 무엇이 달라지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적용되는 상호 관세가 사라진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 대부분에 붙는 상호 관세는 현재 15%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4월 5일부터 전 세계 각국 대다수 수입품에 기본 상호 관세 10%를 부과했다. 동시에 한국·EU·일본 등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엔 고율의 ‘추가 상호 관세’를 매기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한국은 관세 협상 줄다리기 끝에 지난해 10월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상호 관세를 15%로 고정하는 합의를 타결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 관세와 별도로 특정 품목에 매기는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자동차·부품(15%), 철강·알루미늄(50%)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는 IEEPA가 아닌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고 있어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관세 등 긴급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보장한다.
Q2. 이제껏 낸 상호 관세는?
납부한 상호 관세에 대해 기업의 환급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연방 대법원 판결로 환급을 요구할 법적 근거도 생겼다. 코스트코 등 약 1000여 사는 이미 환급을 위한 소송을 낸 상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작년 언론 인터뷰에서 “(대법원에서 위법성을 인정하면) 특정 원고(기업)들은 관세를 환급받을 것”이라고 밝히며, 최대 2000억달러를 환급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큰 혼란이 예상된다. 연방 대법원도 환급 여부나 그 절차에 대해서는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미 행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 등 외국 기업의 경우 자국 기업만큼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내 바이어를 거쳐 수출하는 경우에도 셈법이 복잡하다. 그간 미 바이어들은 ‘관세가 오른 만큼 수출 단가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관세 부담의 최대 100%까지 수출 기업에 떠넘겨왔다. 하지만 법적으로 관세 환급 요구 자격은 관세 납부 당사자인 미 바이어에 있다.
Q3. 관세 부담 낮아질까?
전문가들은 상호 관세가 위법으로 판결돼도 유사한 또 다른 관세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 관세가 무효화되더라도, 유사한 관세 구조를 마련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연방 대법원 판결에도 실질적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인 2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추가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백악관에 따르면 새 관세는 미국 동부 시각 기준 24일 오전 12시 1분부터 대부분의 품목에 10%씩 부과되는 내용으로, 무역확장법 122조에 근거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앞서 상호 관세를 대체할 수단으로 통상법 301조(수퍼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122조를 직접 거론하며 “(이를 통해 지금과) 정확히 같은 관세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역법 122조의 경우 무역 적자가 커지는 상황 등에 처할 경우 대통령이 광범위한 품목에 대해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기간이 최장 150일까지로 제한된다. 통상법 301조와 무역법 232조는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다, 이미 철강이나 자동차 등 여러 품목에 관세를 매기는 근거로 활용된 바 있다. 다만 상호 관세처럼 광범위한 품목에 적용할 순 없다.
이 때문에 122조를 패소 직후 관세 공백을 메울 ‘징검다리’처럼 활용한 뒤,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를 추가 부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Q4. 우리 기업에 대한 영향은?
상호 관세가 15%에서 0%로 줄어든 만큼, 이를 부담하던 기업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 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어떤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내 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작년 상반기 트럼프 행정부의 ‘깜짝 관세 부과·인상 발표’가 반복돼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기업들이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판결로 기업들은 재차 추가 관세가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발표될지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Q5. 한미 무역 협상에 대한 영향은?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연방 대법원 판결로)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열거된 협정의 나머지 조항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측이 자동차·부품 관세를 인하(25%→15%)하고 상호 관세를 15%로 유지하는 대신, 우리는 2000억달러를 10년 이상에 걸쳐 분할 투자한다는 게 한미 협상의 골자이기 때문이다. 주요한 전제 조건이 바뀐 만큼 수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대체 수단을 강구 중인 만큼 각국이 실질적 재협상을 시도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연방 대법원 판결 이후 나올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와 타국 반응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미국과 긴밀히 소통해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환급을 위한 법적 대응 절차도 신속히 파악해 우리 기업에 안내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