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찬성하며 재석 의원 11명 중 찬성 7명, 반대 4명으로 의결됐다.
개정안은 회사가 자사주를 신규 취득할 경우 법 시행 후 1년 이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내에 소각하도록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계와 야당에서 요구해온 ‘비자발적 자사주(특정 목적 자사주)’ 및 중소·벤처기업 예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이달 안으로 3차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해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기업을 위축시키는 법안이 또 늘었다”는 반응이 많다. 소액 주주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1·2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 등이 골자인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도 3월 시행된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경영권 안정을 위한 ‘비상 수단’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보완됐지만, 의무화 부담은 여전
재계는 기업이 경영 상황에 따라 자사주를 재량껏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달라고 요청했지만 ‘의무화’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대신 여당은 이날 일부 보완책을 내놨다.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등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실시 등의 경우 자사주 보유를 할 수 있게 예외를 둔 게 대표적이다. 다만 기업들은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해, 의사 결정의 속도가 떨어지고 주가 부양을 기대하는 주주들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스피 기준 약 36조원 규모에 달하는 ‘비자발적 자사주(특정 목적 자사주)’ 예외도 무산됐다. 비자발적 자사주는 M&A 등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비자발적 자사주 소각 절차를 이사회 의결로 간소화할 수 있게 했다. 원래는 주주총회 등을 거쳐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減資) 절차까지 밟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채권자 반발 등이 생길 수 있다는 재계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여당은 또 통신·항공·전력·방송·신문 등 외국인 지분 제한이 있는 기업은 주총 승인을 거쳐 자사주를 3년 이내 처분하도록 했다. KT의 경우 자사주를 곧장 소각하면 외국인 지분율이 51%를 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재계 “자사주 통한 경영권 방어 무력화”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업 경영권이 불안정해져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경영권이 위협받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보통주보다 의결권이 강화된 주식을 발행하는 차등 의결권 등의 제도가 없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은 적대적 M&A 등의 상황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백기사(우호 세력)에 매각해, 의결권을 되살려 방어에 나서곤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처럼 총수가 직접 보유한 지주사 지분이 작은 곳은 20%대의 자사주가 일종의 ‘안전판’이었다. 또 창업 3~4세로의 승계 과정에 있는 기업들은 상속세 등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이 희석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취약한 고리가 더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외부 투자를 받아 성장한 경우 창업자 지분율이 낮은 편이라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공격에 드는 것보다 작은 비용으로 외부 세력이 경영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재계에선 창업 기업 등은 예외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산됐다. 여당은 이 부분은 앞으로 별도 법안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중소기업이 재무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주가 하락기에 자사주를 사뒀다가 시설 설비 투자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때 매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은행 대출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는데 이번 일로 이런 수단을 잃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