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초대형 LNG 운반선./HD현대중공업 제공

중국 조선업계가 연초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물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가운데, 이 행보가 역설적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선가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주요 조선소들이 대규모 저가 물량을 소화하느라 2029년 이후 인도분까지 건조 공간(Slot·슬롯)을 소진하면서, 향후 쏟아질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는 한국이 독점적 지위를 누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3일 조선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최근 잇따라 진행한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공통적으로 중국발 공급 과잉 우려를 일축하며, 오히려 이를 선가 상승과 수익성 제고의 기회로 해석했다.

중국 후동중화조선과 장난조선소는 지난달 선사 TMS 카디프 가스와 쉘로부터 각각 LNG선 4척을 수주했다. 중국 조선소들이 한국 대비 약 10%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연초부터 수주 릴레이를 펼치자,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LNG선 수주 텃밭이 잠식당하고 선가가 하락해 수익성이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7만4000㎥급 LNG선 신조선가는 작년 2월 2억6500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서 최근 4개월 연속 2억4800만달러 수준에 머물며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저가 슬롯 소진, 韓 선가 협상력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은 중국 조선사의 LNG선 저가 수주 행렬이 외려 “한국 조선사에 호재”라고 평가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31일 진행한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국 조선소들의 카타르 물량이 2030~2031년 인도분까지 배치되면서 중국 내 슬롯이 소진되고 있다”며 “앞으로 나올 미국 물량의 수혜는 한국이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조선소의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국내 조선소 슬롯도 타이트해질 것으로 예상돼 올 하반기에 접어들기 전 LNG 선가는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번 기회를 활용해 미국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저가 수주 슬롯이 소진될수록 선주들의 선택지는 한국으로 좁혀져 선가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한화오션 역시 중국발 물량 공세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한화오션은 콘퍼런스콜에서 중국발 저가 수주 우려에 대해 “최근 중국과 계약되는 선가들이 한국의 수주 선가에 하방 압력을 주는 요인은 있기는 하다”면서도 “하지만 시장에서 중국으로 갈 수 있는 물량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중국이 공급 가능한 캐파가 존재하더라도 시장 수요가 일정 수준을 상회하면, 한국 건조 선가의 중국 연동성은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 이상으로 발주가 쏟아지면, 결국 선주들은 한국 조선소의 가격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예고한 셈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시장 차별화와 기술 격차를 강조하며 중국의 위협을 일축했다. 이우석 HD한국조선해양 측은 콘퍼런스콜에서 “중국 후동중화조선에서 연간 30척, 장난조선소에서 10척 가까이 생산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캐파(생산 능력)를 모두 다 사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장난조선소의 경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 비해서는 품질이나 기술 측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중국 물량이 아닌 국제 입찰에서는 중국 조선사들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며 “예컨대 최근 셰니에르나 모잠비크, 에퀴노르 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는 중국 조선사의 참여가 배제되는 양상이 계속 전개되고 있어 한국 조선소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LNG선 발주 80척 이상 예상… 美 프로젝트 집중

이들 3사가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차기 ‘대어’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수출 확대 정책과 맞물려 지난해 대규모 LNG 프로젝트 투자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발 프로젝트는 운송 거리가 길어 필요한 선박 수가 더 늘어나는 ‘톤마일(Ton-mile)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오지훈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LNG 100만톤을 운송하는 데 LNG선 1척이 필요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로 운송할 경우 거리가 멀어 2.2~3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최종 투자가 결정된 전 세계 LNG 액화 플랜트 용량은 연간 8400만톤이며, 이 중 미국 물량이 6100만톤으로 약 73%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올해 전 세계 LNG선 발주량이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글로벌 LNG선 발주량이 80~100척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한화오션 역시 이 같은 수준을 예상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현재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가격이 인상된 베이스로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 선가는 꾸준히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3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만큼, 무리한 경쟁 대신 제값을 주는 선주만 골라 받는 선별 수주 전략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