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2일 “대한상의가 주관하는 모든 행사를 당분간 중단하고, 임원진 전원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이 상속세 관련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며 대한상의를 공개 질타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최 회장의 뜻에 따라 상의 임원 10명 전원이 조만간 일괄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상의는 대통령 질타 약 세 시간 만에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후 산업통상부 장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국세청장까지 비판에 나섰고, 산업부는 경제단체 긴급 회의를 소집해 유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한편 상의에 대한 감사에도 착수했다. 이 같은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자 최 회장이 기강 잡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이날 상의 임직원에 보낸 서한에서 “경제 현상을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우리에 대해 근본적인 신뢰 문제가 제기된 것은 뼈아픈 일”이라며 “취임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회장으로서 주어진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팩트체크 강화 정도의 재발 방지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모든 행사 중단과 임원 재신임 절차를 진행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최 회장의 결정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정부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데 국내 대표 경제 단체가 대통령 한마디에 너무 바짝 엎드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가 된 상의 보도자료는 상속세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한국인 백만장자의 해외 이탈이 전년보다 2배로 늘어난 2400명에 달한다’는 영국 이민 컨설팅업체 헨리 앤 파트너스 통계를 인용했다. 각국 정부의 공식 통계가 없는 분야여서 국내외 언론이 참고 자료로 활용해온 수치지만, 산출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상의는 해당 통계를 바탕으로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 대통령은 특히 이 대목을 ‘가짜 뉴스’로 규정했다.
최 회장은 미국에 체류 중인 상태에서 이번 사태 대응 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의 협력 논의, 가족과의 만남 등 개인 일정을 위해 설 연휴 이후까지 미국에 머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에는 미 캘리포니아 샌타클라라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해외 일정으로 지난 4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 회동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회동에서는 일부 총수들이 해외 일정을 조정해 참석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