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이나 도심 대형 백화점 내부에는 냉·난방기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내는 늘 쾌적하고 적정한 온도의 공기가 흐른다. 보이지 않는 기계실에서 돌아가는 공조기, 그 공조기가 생산한 공기를 건물 전체로 보내는 송풍기 덕분이다. 1979년 설립된 금성풍력은 한때 외산이 장악했던 국내 공조용 송풍기 시장을 탈환하고, 1979년부터 47년간 한우물을 판 업계 최강자다. 덕분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뽑은 ‘2025년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충남 아산 금성풍력 본사에서 만난 정형권(50) 대표는 “송풍기는 이제 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장치”라며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는 송풍기 하나만 멈춰도 공정이 멈춰설 정도로 중요한 설비”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사채까지 쓰며 국산화
금성풍력의 성장사는 곧 국산화의 여정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대형 건물 공조 시스템은 화려한 국제 인증을 앞세운 외국산의 독무대였다. 정 대표의 부친이자 창업자인 정동기 회장은 “부품 납품만 해서는 미래가 없다”며 송풍기의 핵심인 ‘에어포일 팬(Air Foil Fan)’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송풍기 날개 하나를 개발하는 데 최소 3000만원이 들던 시절, 연구개발 비용은 빠르게 불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주문이 끊겼다. 하지만 정 회장은 “모두 멈췄을 때 움직여야 한다”며 오히려 국산화 연구 속도를 높였고, 사채를 쓰면서까지 연구비를 댔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국산 에어포일 팬은 외산과 대등한 성능에 훨씬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국가 주요 시설들이 금성풍력의 손을 잡기 시작했다. 현재 금성풍력은 국내 공조용 송풍기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설계 프로그램 무상 배포
금성풍력은 ‘의리의 기업’으로 통한다. 자체 개발한 송풍기 설계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업계에 배포했기 때문이다. 경쟁사까지 혜택을 보는 결정이었지만, 정 대표는 “‘함께 가야 오래간다’는 판단으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공조용 송풍기 업계에서 표준처럼 쓰이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유별나다. 2017년 인천에서 충남 아산으로 공장을 이전할 당시,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정 대표는 은행 대출까지 받아 임직원 급여 10% 인상과 격려금 400%, 이사비와 기숙사 제공을 약속했다. IMF 시절 월급 반 토막을 감내하며 회사를 지켜준 직원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 결과 98명 중 95명이 회사와 함께 아산행을 택했다.
금성풍력의 다음 승부처는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전자제어 팬(EC팬)’이다. 연간 1000억원 규모의 국내 시장 99%를 외산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성풍력은 2023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스스로를 ‘영업이사’라 칭하는 정 대표는 “외산 대비 30%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