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8개월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공식 만남은 총 12차례, 한 달에 1.5회꼴이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와 간담회를 한 것을 시작으로, 사안마다 7대, 10대 그룹 총수를 불러 청년 고용과 지방 투자 활성화 등을 요청했다.
대통령의 미국, 중국, 중동·아프리카 순방에도 총수들이 대거 동행했다. 주요 대기업 총수는 사실상 ‘필수 참석’이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앞두고는 대미(對美) 투자 계획 조율을 위해 수시로 총수들이 호출됐다. 협상 이후에는 ‘국내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재차 호출이 이뤄졌다. 샘 올트먼, 젠슨 황 등 글로벌 빅테크 CEO들이 대통령을 만날 때면 주요 그룹 총수들이 배석했다.
청와대는 ‘기업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업들 사이에선 “이젠 만남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극심한 상황에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청년 고용 확대’ ‘지방 투자 확대’ 같은 무거운 숙제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4일 청와대 회동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청년 고용과 지방 투자, 창업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총수들은 “향후 5년간 약 270조원 규모의 지방 투자를 하고, 올해 채용도 5만16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에도 주요 그룹들이 대통령 임기에 맞춘 고용·투자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내용을 제대로 하는지 ‘숙제 검사’를 하고, 다시 현안을 던져주는 모양새”라고 했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애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지만 기업들의 체감은 정반대다. 재계가 기업 경쟁력 훼손을 우려하며 재고를 호소해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3차 개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노사 관계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해외 기업들까지 반대했던 ‘노란봉투법’은 다음 달 시행이다. 반면 경영 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 재계가 줄곧 요청해온 배임죄 폐지나 규제 완화는 지지부진하다.
총수들이 미국을 오가며 측면 지원했던 한미 관세 협상은 ‘국회 입법 지연’이 빌미가 돼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 재계 인사는 “소통만 잦으면 뭐 하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