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투박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조선·철강·정유·화학 등 이른바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들이 세련된 광고로 이미지 변신에 나서고 있다. 기술력이나 실적 위주의 보수적인 홍보에서 벗어나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위트 있는 콘텐츠로 젊은 층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은 사례는 HD현대의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합병해 출범한 ‘HD건설기계’ 광고다. 국내 1·2위 건설기계 기업이 지난달 결합해 국내 최대 건설기계 기업이 탄생했는데, 두 브랜드를 신랑·신부로 의인화해 결혼식을 올리는 형식으로 광고가 구성됐다.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1억회 이상 조회됐다. 광고 기획은 1997년생 사내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외부 AI 콘텐츠 제작자를 직접 섭외해 진행됐다고 한다.
HD현대의 조선 계열사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배우 김우빈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선보이며 화제가 됏다. ‘진짜 멋있는 남자는 배를 만든다’는 문구와 함께 조선소 현장을 보여줬는데, 근무 환경이 거칠고 경직돼 있다는 고정관념을 긍정적으로 뒤집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존 모델인 안성기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시도였다.
포스코는 지난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국내 프로리그인 LCK의 공식 후원사로 나섰다. LCK의 주 시청층인 10~30대와 접점을 넓히고 친근한 이미지를 심기 위한 전략이다.
‘철에는 판타지가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포스코는 게임 캐릭터의 무기인 ‘다리우스의 도끼’를 신소재 고망간강으로 실제 제작해 전시하기도 했다. 고망간강은 포스코가 독자 개발한 소재로, 철에 다량의 망간을 첨가해 영하 196도의 극저온에서도 우수한 기계적 특성을 나타낸다. 유튜브 영상엔 “낭만 최대치 호감기업” 등 긍정적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6월 아이돌 그룹 에스파와 협업해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신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에스파는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 ‘쇠 맛’ 아이돌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대제철은 이런 에스파의 콘셉트와 ‘철’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접목시켜 홍보한 것이다.
삼양그룹 식품·화학 계열사인 삼양사도 지난해 6월 배우 박정민을 모델로 발탁해 ‘스페셜티’편 기업광고를 선보였다. 여기서 스페셜티란 일반적인 범용 제품과는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기술 집약적 소재를 말한다. 식품·화학·의약바이오 등 핵심 사업을 대중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불닭볶음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그룹과의 혼선을 막기 위해 “그 회사 아니다”라며 위트 있게 풀어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꼰대 기업’이나 투박한 이미지가 강하면 우수 인력이 IT·테크 기업으로 쏠린다”며 “기술과 성과만으론 부족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회사’라는 감각을 콘텐츠로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