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석탄 저장소 - 2024년 5월 강원 동해시에 있는 GS동해전력의 화력발전소 석탄 저장소가 텅 비어 있는 모습.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선로(HVDC)의 완공이 7년 넘게 지연되면서, 최신식 설비를 갖춘 동해안 일대 화력발전소 가동률이 30%를 밑돌고 있다. /김지호 기자

최근 강원도 동해안에 데이터센터 건설을 검토하던 서울대는 계획을 보류했다. 인근 민간 석탄화력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저렴하게 직접 공급받는 전력직거래를 희망했지만, 정부 행정 미비로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동해시에 있는 합금철 제조사 DB메탈은 치솟는 전기료에 공장 가동률이 반 토막 났지만, 바로 옆 민간 석탄화력발전소의 값싼 전기를 쓸 방법이 없다.

2011년 전국적인 대정전(블랙아웃) 사태 이후 정부가 “전력이 모자라니 빨리 좀 지어달라”며 유치했던 동해안 민자 석탄발전소들이 정부의 정책 방치 속에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송전로는 7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대신 전기를 지역에 직접 팔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세부 지침을 안 줘 이마저 막혔다. 송전망도 직거래도 막힌 발전소들은 “탈(脫)석탄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필요해서 사업 길을 터줬으면 탈석탄 목표 달성 시점인 2040년까지는 생산한 전기를 팔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송전망 늦어져 직거래 허용했지만 무용지물

동해안 민자 석탄화력발전소들은 2011년 9월 블랙아웃 사태 이후 정부가 “전력 공급원을 다변화해야 한다”며 사업 속도가 빠른 민간에 발전 사업을 열어주면서 추진됐다. 삼척·강릉·동해에 들어선 민간 발전소에 투입된 자금만 약 17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송전을 위해 2019년 준공하기로 한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HVDC) 송전선로는 주민 반발과 인허가 지연으로 아직도 준공되지 못하고 있다. 송전망이 막히자 최신식 발전소들의 가동률은 20~30%대로 떨어졌다. 이에 국회는 2024년 1월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송전 제약이 있을 경우 발전소가 인근 산업단지·데이터센터 등과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실제 계약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기후부가 전력직거래에 반드시 필요한 세부 사항을 규정한 ‘정부 고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금 산정, 전력 계통 사용, 책임 소재 여부가 정해져 있지 않아 발전소와 수요처가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올리는 것이 현 정부 탈석탄 기조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고시 제정을 안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후부 관계자는 “검토할 내용이 아직 남았다”고 말했다.

◇수조원 기회 날려…정책 신뢰 무너진다

강릉에코파워·GS동해전력·삼척블루 등 민간 3사가 지난 3년 간 날린 이익 창출 기회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가동률이 떨어져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막대한 설비 투자에 따른 원금과 이자는 회사채를 찍어 돌려막는 실정이다. 발전소 가동률이 줄면서 지방세수도 2024~2026년 약 450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현지에서는 “동해안에 공장을 보유한 LS전선의 경우 수주 물량이 밀려 있는데, 지역에서 값싼 전기를 바로 공급받으면 경쟁력이 더 살아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국회를 통과한 법의 시행을 미루는 것은 정책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발전소를 지어놓고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발전사와 지역 경제 모두에 불합리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