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이 연초부터 잇따라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번 자사주 매입 러시는 작년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해가 장기간 부진했던 주가를 끌어올리는 차원이었다면 코스피 5000 시대를 맞은 올해는 주가 상승 흐름을 유지하려는 관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이 증시 흐름에 민감한 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까지 공언한 만큼, 기업들로선 주주 환원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주가 상승세 이어가야”
가장 공격적인 곳은 삼성전자다. 올들어 한달 새 6조원이 넘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놨다. 목적은 모두 임직원 보상용으로, 대부분 ‘1년간 매각 금지’ 조항이 적용됐다. 1년간 주식을 팔지 않으면 주식 보상을 15% 더 해주는 인센티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연말 12만원대였던 주가는 16만원까지 치솟았다. 성과 보상과 내부 결속이라는 당초 목적을 초과 달성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물량 홍수를 완충하는 역할도 했다. 지난 9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전자 1500만주 처분 계약을 맺었다. 대규모 물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회사가 자사주 매입으로 그 압력을 완충한 셈이다. 주가가 뛰면서 홍 관장의 현금 확보 규모도 늘었다. 삼성전자로서는 주주 환원과 성과 보상, 오너가 지원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현대차도 지난 29일 실적 발표와 함께 4월 말까지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연내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향후 3년간 최대 4조원 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밸류업 계획 이행 차원이다. LG전자도 같은 날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사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 28일 12조24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내달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잇단 자사주 매입 발표는 주가 상승 동력을 계속 유지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임원 보수 옆에 ‘주주수익률’ 표시해야
자사주 매입은 통상 금액 기준으로 이뤄진다. 주가가 10만원일 때 1조원으로 살 수 있던 주식은, 주가가 15만원으로 오르면 같은 돈으로 3분의 2 수준밖에 사지 못한다는 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처럼 한 달 새 주가가 수십 퍼센트씩 뛰면 자사주 매입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매입을 이어가는 것은, 자사주 매입이 주주 신뢰와 주가 흐름을 유지하는 약속 이행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올해 5월부터 기업 공시 규정이 강화돼 최근 3년간 총주주수익률(TSR·Total Shareholder Return)을 임원 보수와 병기해야 하는 것도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는 한 배경이다. TSR은 일정 기간 주가 변동률과 배당 수익률을 합산해, 주주가 주식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보여주는 지표다. 주주들의 수익률이 임원들의 성적표가 되는 셈이다. TSR이 낮으면 ‘왜 임원들만 돈잔치하느냐’는 주주들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현대차는 기존 25% 수준이었던 TSR을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을 통해 10%포인트 높여 35%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