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반도체와 로봇주(株) 주도로 ‘코스피 5000 달성’의 축포가 터지고 있지만, 많은 기업은 올해 경영 환경이 여느 때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그룹 총수와 경제단체장이 발표한 신년사에는 올해 글로벌 경기 둔화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중국의 기술 추월 현실화 등 기업이 마주한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담겨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15%로 합의한 상호 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갑자기 25%로 올리겠다고 기습 발표를 하는 등 올해 역시 극심한 불확실성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했다. 국내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원청에 대한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등 권익 확장을 골자로 하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3월에 시행되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도 조만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숱한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내 결국 반전을 이뤄낸 경험을 갖고 있다. 산업계 전통 강자들이 줄줄이 흔들리는 급변기 속에서 인공지능(AI)을 해법 삼아 제품, 서비스는 물론 조직 문화에 혁신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모든 기업의 화두, AI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은 각 기업의 올해 주력 무기와 경영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場)이었다. 삼성전자 노태문 대표이사는 CES에서 올해 AI를 적용한 4억대의 신제품을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스마트폰부터 TV, 가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보유한 삼성은 4억대의 기기를 한꺼번에 연결해 ‘통합 AI’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SK그룹은 반도체, 통신, 에너지, 배터리 등 기존 주력 사업 전반에 AI를 결합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AI 전환(AX)을 통해 업무 방식과 조직 문화도 바꿔 나가고 있다.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들은 AI 중심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 기업을 넘어 ‘AI 로봇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동차를 개발·생산하며 갈고닦은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견고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여기에 엔비디아·구글 등과 협업해 세계 최고 수준의 AI 두뇌를 탑재하는 모델이다. 현대차는 2028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자동차 공장에 도입하는 과감한 실험을 통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협업 모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선택과 집중, 해외 사업 강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발맞춰 비핵심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래 사업에 재원을 집중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도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동시에 불황이 이어지는 내수 시장을 넘어 성장성 높은 해외 시장을 잡으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올해 내놓은 신년사의 핵심도 ‘혁신을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구 회장은 “10년 후 고객을 미소 짓게 할 가치를 선택하고,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혁신이야말로 LG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선택한 그곳에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롯데그룹은 올해 사업 구조 개편을 뜻하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을 화두로 내세웠다. 그룹의 핵심인 화학 사업은 고부가가치 스페셜티로 전환하고, 바이오·수소·모빌리티 등 신성장 동력에 과감하게 자원을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모태인 식품과 유통 사업군은 인도, 베트남 등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를 양대 축으로 하는 ‘투 트랙(2Core)’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불확실성 돌파에 나섰다. 보호무역 강화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란 이중 악재를 이겨내기 위해 포스코는 2024년부터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고성장·고수익 지역인 인도와 미국을 중심으로 철강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