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기습 발표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가 다시 ‘관세 쇼크’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한·미 협상 타결로 차 관세가 15%로 낮아지며 어렵게 위기를 넘겼는데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관세로 인한 실적 악화도 문제지만 조변석개하는 정책 탓에 경영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사업 환경이 더 치명적”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차 업계는 지난 1년 새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당초 0%(무관세)였던 대미 수출 관세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작년 4월 3일부터 10월 말까지 7개월간 25%가 적용됐다. 이후 한·미 협상이 타결되면서 작년 11월 1일 수출 물량부터 15%로 인하, 소급 적용됐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0%에서 15%로 급등한 만큼 여전히 큰 부담”이란 반응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이번 기습 발표가 현실화하면 다시 25%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셈법은 꼬일 대로 꼬였다. 정의선 회장은 작년 3월 미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는 등 관세 인하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돌발 변수에 발목이 잡히면서, 약속한 투자는 투자대로, 관세는 관세대로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二重苦)에 직면할 위기다.
◇“25% 적용시, 연간 영업익 절반 날아가”
25% 관세가 적용됐던 작년 3분기(7~9월), 현대차그룹은 미국 관세 영향으로만 3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날렸다. 현대차와 기아의 손실 규모가 각각 1조8210억원, 1조2340억원이었고 현대모비스 등 다른 계열사들도 줄줄이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고한 25% 고율 관세가 ‘상수’로 굳어지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관세가 25%로 회귀할 경우, 현대차와 기아가 부담해야 할 연간 관세 비용은 최대 10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양사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21조원)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당장 수출 전선도 비상이 걸린다. 25% 고율 관세는 현지 판매 차량의 가격 경쟁력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4사는 지난해 북미 지역에 총 164만9930대를 수출했다. 현대차(71만대)와 기아(48만대)의 수출 물량만 약 120만대로 전체의 73%에 달한다. 한국GM도 44만대 이상을 수출한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충격은 부품 협력사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환율 변동과 물류비 상승으로 이미 체력이 바닥난 중소 협력 업체들로선 버티기 힘든 악재다.
◇‘불확실성’이 최대 리스크, 15% 유지 기대도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마진을 포기하고 현지 판매가를 동결하며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버티기 전략’을 썼다. 도요타 등 일본 경쟁사들이 관세를 반영해 가격을 올릴 때,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 점유율을 지킨 것이다. 지난해 대규모 이익을 날린 상황에서 올해 또다시 이 같은 전략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한마디에 수립해 둔 사업 계획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년간 미국 관세는 시장 물가보다 더 변덕스러웠다”며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글로벌 생산 라인과 공급망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도대체 어떤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다만 업계에선 양국 정부가 수개월 협상해 합의한 내용이 파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협상을 통해 기존 합의대로 15%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대차, 기아 주가도 이날 장 초반 4~6%대 하락 출발했다가, 이 같은 기대에 힘입어 각각 0.81%, 1.10% 소폭 하락으로 마감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기업 경영 환경의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이 국내 입법 절차에 따라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