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던 걸 AI가 순식간에 - 지난 7일 경기도 시흥시 대덕전자의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한 직원이 '불량 검사 AI'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이 AI는 반도체 기판(PCB) 132개를 한꺼번에 스캔해 양품은 초록색, 스크래치가 난 불량품은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기존에는 사람이 기판을 20~30배 확대해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했지만, AI는 30초 만에 모든 검사를 마친다. /박성원 기자

지난 7일 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 내 대덕전자 B4센터 클린룸.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에 들어갈 반도체 기판(Package Substrate) 스트립(strip)에 대한 불량 검사가 한창이었다. 스트립이란 엄지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기판 여러 개가 판 초콜릿처럼 붙어 있는 형태다. 작은 기판을 하나하나 다루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스트립 형태로 만들고 검사하는 것이다.

이날 검사 중인 스트립이 스캔 장치를 통과하자 모니터에는 132개 네모 칸이 뜨고 녹색(정상)과 적색(불량) 불빛이 칸칸마다 채워졌다. 스트립 한 장을 검사해 132개 기판의 불량을 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0초. 낱개로 치면 0.2초 꼴이었다.

대덕전자는 1970년대 전자제품 메인 보드로 쓰이는 PCB(인쇄 회로 기판)의 국산화를 주도한 주역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판 생산 업체로 발돋움했다. 이제 AI로 제조 공정을 또 한번 혁신하고 있다. 기판은 종이에 잉크로 문양을 찍어내듯 전기가 안 통하는 얇은 판 위에 배선(회로)을 정교하게 그려 넣은 핵심 전자 부품. 과거엔 사람이 스트립 표면을 20~30배 확대해 칸칸을 하나씩 확인하며 불량을 판별했다. 3교대로 돌릴 만큼 부담이 컸다. 자동화도 시도했지만 한계가 컸다. 기판에 상처를 안 남기는 바람으로 불어낼 수 있는 먼지를 흠집으로 오인해 불량 처리하거나, 티끌 같은 흠집을 놓치는 일이 적잖았다.

◇AI로 반도체 기판 검사 정확도 높여

회사는 수십만 장의 진짜 흠집과 단순 먼지 사진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AI는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건 털어내면 되는 먼지니 합격(Pass), 저건 회로가 긁혔으니 불량(Fail).” 대덕전자 AX 전담팀을 이끄는 김민성 AIR(AI Revolution) 팀장은 “AI가 도입된 뒤 정확도가 최대 90% 뛰었다”고 했다. 소요 인력도 크게 줄였다.

AI 전환은 가장 까다로운 에칭(Etching·식각) 공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에칭은 화학 약품으로 기판의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 회로를 남기는 작업이다. 문제는 고객사마다, 제품마다 요구하는 회로 모양이나 스펙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기존에는 새 제품을 찍을 때마다 최적의 약품 농도와 온도,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찾기 위해 시험 생산(트라이얼 런)을 반복해야 했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발 빠른 AX로 효율 극대화

대덕전자는 AI에 각 상품별 생산 조건(용액 농도, 온도, 속도 등)과 결과 데이터(전기 회로 두께, 깊이 등)를 학습시켜, 최단 기간 내 최적의 조건을 찾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김봉균 공정혁신 팀장은 “AI가 최적의 조건을 바로 찾아줘 시험 생산 공정이 줄어들면 공장 설비를 늘리지 않고도 생산능력이 최대 20%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서, 생산 공정을 늘리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대덕전자가 제조 AX(AI 전환)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런 산업 특성 때문이다. 기존 설비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생존의 열쇠다.

여기엔 창업주 고(故) 김정식 회장의 철학도 깃들어 있다. 그는 타계 2달 전인 2019년 2월, 병상에서 서울대에 500억원을 쾌척하며 “미 MIT 못지않은 AI 센터를 지어 달라”고 했다. 산업의 미래가 AI에 있음을 누구보다 일찍 꿰뚫어본 것이다.

☞반도체 기판

반도체와 인쇄회로기판(PCB)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중간 장치. 반도체 아래에 깔린 얇은 실리콘 기판에 회로를 새겨, 반도체의 미세한 신호를 메인보드에 전달하고 동시에 반도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