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6일 정부세종청사 기후부 기자실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을 기존 계획(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탈(脫)원전’ 또는 ‘신규 원전 억제’ 기조였던 현 정부가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과 탈탄소 전환이란 현실 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다고 판단해 입장을 바꾼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6일 “11차 전기본에 담긴 신규 원전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분산형 전원 차원에서도 여러 의미가 있어 예정대로 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여야 합의로 확정한 11차 전기본에는 1.4GW(기가와트) 규모 원전 2기를 2037년과 2038년에 각각 준공하고, 0.7GW 규모 SMR은 2035년까지 도입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정부는 조만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원전 부지 공모 절차에 착수, 2030년대 착공을 거쳐 당초 일정대로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기후부 측은 “13년 11개월은 부지 선정 과정까지 포함한 기간”이라면서 기존 준공 목표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11차 전기본이 정한 신규 원전 계획에 대해 “국민 동의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며 재검토를 예고했고, 정책 토론회와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 조사 결과 원전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이 80%를 웃돌았고,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도 60%를 넘겼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에너지 측면에서 섬나라이면서 동서로 길이가 짧아 태양광 발전만으로 (전력망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문재인 정부 때 정책과 똑같이 가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력 분야 탄소 감축을 위해 석탄·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으로 전력 시장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신규 원전 2기로는 AI 전력 감당 안돼… 전문가들 “추가 건설 필요”

이재명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탈원전 시즌2’ 논란은 일단락됐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손정의, 샘 올트먼, 빌 게이츠 같은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과 교류를 통해 ‘AI 시대의 전력은 국가 경쟁력 그 자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은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간헐성이라는 한계를 보완할 대안은 원전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 정부가 26일 신규 원자력 발전소 2기 건설을 기존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 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은 건설 중인 울산 울주 새울원자력본부 새울 3·4호기의 전경.

다만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정부의 선언과 별개로, 원전 업계에서는 일정의 현실성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 원전은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 주민 수용성 확보, 설계·조달·시공까지 단계가 길고 변수도 많다. 정부가 조만간 지자체 공모에 착수해 2030년대 착공, 2037~2038년 준공을 제시했지만 앞으로 절차가 얼마나 속도감 있게 진행될지가 관건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미 1년이 지체된 상황에서 준공 목표를 맞추려면 정부가 인허가 절차 단축 등 전폭적인 행정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은 11차 전기본 확정 직후인 작년 3월 신규 원전 부지를 심의·결정하는 부지선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부지선정위는 경북 경주·영덕·울진, 울산 울주 등 4곳의 원전 유치 희망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부지선정위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원전 2기로도 부족

전문가들은 이제 초점을 신규 원전 2기 외에 ‘추가 원전’ 건설 여부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정부가 준비 중인 12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을 얼마나 더 반영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의 2030년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두 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이번에 건설을 확정한 원전 2기만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부는 “AI·전기차 확대 등에 따른 전기화 수요를 예측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믹스와 분산형 전력망 계획 등을 과학적·객관적으로 담아내겠다”고 했다.

지난 정부는 11차 전기본에서 31.7%(2024년 기준)인 원전 비중을 2038년까지 35.2%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35.2%를 유지하려고만 해도 신규 원전 20기와 SMR 12기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는 분석을 최근 내놨다.

김성환 장관도 원전 추가 건설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전 추가 건설을) 일부러 닫아두고 있진 않다”며 “어느 정도 수준이 대한민국 에너지 믹스에 맞는지를 12차 전기본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리한 탈석탄 속도전도 우려

원전 건설과 별개로 12차 전기본에 반영될 것으로 보이는 ‘2040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속도전’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다. 두 정책 모두 이재명 대통령의 에너지 분야 핵심 공약이다. 11차 전기본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1기를 수명이 끝나는 순서대로 2038년까지 총 40기를 폐지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한 발 더 나가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전면 폐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이재명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100GW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태양광으로만 충당할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매일 태양광 패널(0.5kW 기준) 약 7만장을 전국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하루에 축구장 20개에 해당하는 면적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풍력으로 대체하더라도 매일 4MW(메가와트)급 터빈 9기를 5년 내내 세워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인 간헐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속도를 내면 전력 수급 불안을 되레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확대가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설치 부지 확보와 경제성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석탄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원전뿐 아니라 완충 역할을 할 유연성 전원(가동과 중단이 손쉬운 발전원)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