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남긴 유산 정리가 5년 만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이 오는 4월 상속세 12조원을 완납하는 한편,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도 해외 순회전을 통해 세계 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재무적 의무 이행과 문화적 사회 환원이라는 두 가지 승계 과제가 동시에 마무리되는 셈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재계에 따르면, 삼성 일가는 오는 4월 마지막 상속세 분납금을 납부할 예정이다. 2020년 이건희 회장 별세 당시 주식(19조원 상당), 부동산, 미술품 등에 부과된 상속세는 12조원이다. 최고 세율 50%에 최대 주주 할증 20%가 적용된 금액으로, 당시 국내외를 통틀어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로 화제가 됐다. 가장 비싼 국유 재산인 경부고속도로(12조원) 가치와 맞먹는 수준이다.
◇9.4조원 상당 주식 매각
유족들은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세금을 분납하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왔다. 재원 마련을 위해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세 모녀는 작년 말까지 16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S 주식 등 총 7조2833억원 상당의 지분을 매각했다. 추가로 홍 관장이 지난 9일 2조1000억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 신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9조4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자금 확보가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그룹 지배 구조는 이재용 회장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회장은 주식 매각 대신 배당금과 대출 등을 통해 세금을 충당해 왔다. 그 결과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상속 전 0.7%에서 1.45%로,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인 삼성물산 지분은 17.33%에서 20.82%로 증가했다. 삼성생명 지분도 0.06%에서 10.44%로 늘었다. 상속세 납부 과정을 거치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이 회장의 지배력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최근 반도체 업황 회복 등에 힘입어 이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21일 기준 30조원을 넘어섰다.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 주식을 상속받은 지 4년 9개월 만에 지분 가치가 15조6000억원에서 두 배 가까이로 뛴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첫 해외 전시 성황
상속세 완납을 앞두고 유족들은 이건희 회장의 또 다른 유산인 미술품 관련 행보에도 나선다. 이재용 회장과 세 모녀 등 유족과 삼성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은 다음 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전시를 기념하는 갈라 디너(28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미국 주요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유족들은 이건희 회장이 생전 수집한 국보·보물급 지정 문화재 60건과 김환기, 박수근,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 2만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한 바 있다. 주요 작품을 뽑아 해외로 나간 이번 전시는 두 달 만에 약 5만명이 관람했다. 이후 미국 시카고박물관, 영국박물관 등을 순회할 예정이다.
이건희 회장의 유지에 따른 의료 분야 기부 사업도 진행 중이다. 7000억원이 투입된 감염병 전문 병원과 서울대병원 감염병 임상 연구 센터는 2028년 개원이 목표다. 3000억원 규모의 소아암 및 희소 질환 지원 사업은 2030년까지 환아 1만7000명 지원을 목표로 1500여 의료진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