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가 물러난 뒤 수장 공석 상태를 유지해온 주요 에너지 공공기관들이 후임 기관장 선임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시대인 만큼, 전문성과 정무적 균형 감각을 두루 갖춘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1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지난 8개월 동안 기관장 자리를 비워뒀던 한국전력거래소가 최근 이사장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지원서 접수는 오는 27일 오후 6시까지다. 전력거래소 이사장 임기는 3년이며, 경영 성과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전력거래소는 전국 발전소와 송전망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며 전력 수급 안정을 24시간 책임지는 우리나라 전력 산업의 ‘관제탑’과 같은 기관이다. 특히 태양광 발전 급증에 따른 잦은 출력 제어가 국내 전력 시스템의 잠재 리스크로 떠오른 후로는 전력거래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작년 5월 정동희 전 이사장이 자진 사퇴한 이후 지금까지 후임 이사장 선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통상 기관장 공석 시에는 경영부이사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데, 전력거래소는 전력계통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김홍근 계통부이사장에게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겼다. 곽근열 경영부이사장이 정동희 전 이사장 사퇴 직전에 선임돼 조직과 업무 전반에 대한 파악이 충분치 않았던 데 따른 결정이었다. 김 부이사장은 전력거래소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응하기 위한 발전소 출력 조정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전력망 위기 대응을 총괄하는 계통부이사장이 이사장 직무대행까지 겸하는 바람에, 거래소 안팎에서는 이사장 선임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 에너지 학계 전문가는 “전력 시장의 운영자인 전력거래소 수장 자리를 8개월이나 공석으로 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제라도 이사장 공모를 시작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력거래소를 포함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공석 상태였던 에너지 공공기관들도 최근 잇따라 기관장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황주호 전 사장이 퇴임한 한국수력원자력, 최연혜 전 사장이 물러난 한국가스공사 등이 최근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한국석유공사, 한전KPS, 한국가스기술공사 등도 사장 공모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에너지 공공기관 수장에는 정책 이해뿐 아니라 산업과 기술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성이 아닌 대통령 공약 이행에 초점을 맞춘 인물 발탁이 주가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에너지공단 신임 이사장에 선임된 최재관 전 햇빛배당전국네트워크 대표의 경우 전국농민총연맹 정책위원장, 주민참여재생에너지운동본부 대표, 문재인 정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최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주민 참여형 태양광의 모범 사례로 언급한 경기 여주 구양리 ‘햇빛소득마을’ 사업 설계에 관여했다.
업계에서는 최 이사장의 이러한 경력이 에너지공단 이사장 선임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에너지공단이 주민 참여형 태양광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에너지 효율 개선, 에너지 전환 컨설팅, 산업·건물 부문 에너지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 에너지 공공기관이다.
에너지 전문가는 “특정 영역에 집중된 이력이 기관 전체 역할을 아우르기에 충분할지 의구심이 드는 인사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 공공기관의 종합적 기능과 책임에 걸맞은 전문가 선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